에릭호퍼의 <맹신자들>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 기사승인 : 2022-01-18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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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우수한 K-방역으로 또는 K-재앙으로 표현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끔찍한 일제 식민지, 동족상잔, 국제 원조로 겨우 풀칠하는 극빈의 처지, 분단의 아픔 속 정치적 혼란, 인권이 묵살된 군사정권의 시기를 온몸으로 마디마디 겪어냈다. 그렇다고 냄비근성, 빨리빨리, OECD 자살 1위국, 죽음 같은 경쟁사회로만 우리를 재단할 수는 없다. 한국은 전 세계 유례없이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 중 하나다. 결코 쉽지 않은 길, 많은 피와 상처를 남긴 처절한 길이지만 지금의 경제성장과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이루는 발판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근성과 기질을 접할 때마다 놀라곤 하는데 저항의 역사를 보면 자부심도 느껴진다. 권력에 복종도 체념도 회피도 않고 계속된 저항, 외침, 문제제기는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표현이지만 한편으론 시끄럽고 피로감도 크다. 대중운동의 거대한 흐름에 참여한 평범한 개인은 어떤 모습인가?


에릭 호퍼는 광신적 기독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나치, 일본인 등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광신적 성향은 서로 같아 보일뿐더러 서로 같은 것으로 취급돼왔다고 한다. 그들에게 팽창과 세계 지배 의지를 불어넣는 힘도 마찬가지다. 모든 유형의 헌신과 신념, 권력의지, 단결과 자기희생에는 어떤 획일적인 속성이 있다.


좌절한 사람들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자각으로 괴로워하고,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그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기에 단결과 자기희생 성향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쓸모없는 자신에 대한 강한 혐오와 감정을 잊기 위해 위장하고 벗어던지고 없애버리고자 하는 욕구가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를 낳기도 한다. 좌절감은 욕구를 실현시키는 기제를 만드는데 현실을 비하하는 기질, 몽상에 빠지는 습성, 습관적인 증오심, 남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 현혹되기 쉬운 경향,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려는 경향으로 드러나며 이는 단결의 동인이자 무모함을 부추기는 배후이기도 하다.


“주위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도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양식이 너무나 위태로워서 삶의 환경을 제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면 우리는 검증된 것, 익숙한 것을 고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정해진 삶을 따름으로써 내면 깊숙한 불안감을 중화시킨다.”(본문 속에서)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과의 조화가 깨진 맹신자는 초연할 수도 평정을 유지할 수도 스스로 만족할 수도 없어 고반응성 물질이 돼 불안정한 화학원소 모양으로 손에 잡히는 아무것하고라도 결합해서 전심전력으로 매달리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과 화해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중요한 대목이다.


‘전반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은 편중돼 있지 않은가, 듣고자 하는 의견만 듣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균형 잡힌 생각을 갖고 싶었다. 스스로 신봉하는 이념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옳음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도 생겼다. 보거나 들을 가치가 없는 사실에 눈감고 귀 막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자들이 지닌 불굴의 결단력과 충성심의 원천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대중운동에 맹신하는 자들의 심리를 낱낱이 까발리는 내용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좌절한 자들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타당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자율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주장이 반복될수록 대중운동에 투신하는 이들을 모두 자기부정으로 여기는 것 같아 다소 과하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저자가 시작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지론이니 생각을 주고받으며 논의해 보자고 한 점과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해 참고했다.


평범한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화해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좌절감을 감당할 수 없어 잊기 위해 열렬한 감정을 불러오는 운동에 매진하게 되는 것 같다. 시스템에서 탈락한 개인은 자기경멸과 같은 부정적인 자아인식이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자유로운 나’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좌절한 경험이 상처가 돼 내면과 외면으로 분노와 우울을 동시에 분출했던 경우가 있었다. 안과 밖이 경계 지어 있지 않다는 관점에서는 그런 성향이 충분히 이해된다. 사회의 불명예스러운 자들의 역할과 대중운동 초기에 지식층의 역할을 알게 됐다. 한국 대중운동에는 정치와 경제적 사안 때문에 미국, 일본, 북한까지 연결돼 있는데 운동의 성격과 결과에 이들 관계성까지 고려하게 됐다. 화합과 소통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해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 필요하고 있는 그대로의 결핍과 소외를 품을 여유가 전제돼야겠다.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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