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힘껏 다하고 정자에서 여생을 보내는 일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5-24 08: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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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반구정 앞 오백년 동안 강물을 바라보면서 자란 느티나무가 우람차다. 반구정에 살던 어른이 노환으로 와병 중이었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어제는 세 곳의 정자를 돌았고 오늘은 반구정과 합강정 두 정자를 보고 돌아오는 여정이다. 남지읍은 창녕군 최남단에 있는 읍으로 낙동강물이 부드럽게 돌아 엉덩이선 같은 물 흐름을 이루는 곳이다. 남지읍으로는 영산천과 계성천이 흘러들어오고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 물줄기가 진주를 거쳐 남지읍에서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남지(南旨), 남(南)은 방향을 이야기하니 지(旨)가 가진 뜻이 뭘까 궁금했다. 旨(지)는 뜻이 합쳐진 문자로 숟가락[匕]으로 음식[日←甘]을 맛본다는 뜻이라고 하니 남지에는 맛난 음식 재료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남지에는 기름진 드넓은 충적평야가 만들어졌고 과거에는 낙동강 수운을 이용한 농산물 집산이 활발했다. 쌀·배추·양파가 많이 생산되며, 풋고추·오이 등 채소와 땅콩이 특산물로 재배되고 있다.


아침까지 든든히 먹은 우리는 아침부터 찌는 더위 속 거리를 지나 남지교를 걷는다. 강가에 오니 강바람이 불어 어제 정도의 폭염은 아니다. 남지교는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놓여있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아 한산한 하늘색 철제 다리가 오른쪽에 확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다리다. 창녕 남지철교는 경상남도 창녕군과 함안군 사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설치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철교로, 2004년 12월 31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됐다. 1900년에 가설된 한국 최초의 강철교인 한강철교와 1911년에 가설된 압록강 철교에 이어 일제강점기인 1931년 구마 국도상에 남지철교가 세 번째로 가설됐다. 사대강 개발 시 무모한 모래 채취로 한때 붕괴 위험에 놓이는 때도 있었다.


6.25를 겪는 등 갖가지 애환이 깃들어 있고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다리 중 하나다. 철근콘크리트 T형교로 상부 철골 트러스는 마치 물결이 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다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는 한반도를 영원히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다리가 끝나는 위치에 알록달록 연등을 달고 있는 능가사가 낙화암에 버금가는 병풍 같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이 바로 초파일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것을 후회했지만 점심 자리는 제대로 봐뒀다. 어떤 기원을 갖는지는 모르지만 남지 건너편 강변은 아름다운 바위 절벽을 자랑한다.  

 

능가사의 옛 이름은 용주사(龍珠寺)다. 용주사(龍珠寺)는 이름 그대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뜻이고 여의주는 지나간 부처의 모든 사리가 변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하는 보석으로 보고 있다. 능가사 뒷산 이름이 용화산(龍華山)이니 절이 있는 이곳은 용머리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청송사라는 큰절도 있었다고 한다. 남지철교가 만들어지기 전 경남 서부인들이 한양으로 갈 때나 지역상인들이 나룻배를 이용할 때 안전운항을 위해 이 절에서 용왕제를 주관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남지철교 아래에 용의 아들인 이목(離目)이 살고 있어 가끔 강물 풍랑이 심해 나룻배 사고가 빈번해 해마다 용왕제를 지내야 강 건너기가 쉽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 번뇌도 줄여주었다고 한다.  

 

다시 길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다. 날이 덥고 힘든 여정이다. 내려가는 길에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지고 시간을 보내는 저수지를 만난다. 벌써 꾀꼬리 소리가 이산 저산 가득하다. 그냥 강태공 옆자리에 앉아 되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었다. 다행히 산길은 숲이 우거지고 아까시 향기 가득하다. 반구정에 도착하니 낙동강을 바라보며 500년 된 느티나무에 그냥 압도됐다. 반구정은 빈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데 노환의 어른을 수발들고 있었다.  

 

본디 반구정은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에 있는 강가에 딱 붙은 말바위에 지었다고 한다. 말바위에 있던 반구정은 침식돼 1858년 용화산 중턱의 옛 청송사(靑松寺)가 있었던 자리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말바위에 정자를 지었던 분은 조방 선생이고, 호는 두암(斗巖) 혹은 반구정(伴鷗亭)이다. 조방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문중의 장정 100여 명과 함께 곽재우 장군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암나루와 기강을 지키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들과 함께 많은 적을 무찔렀고 난이 평정되자 낙동강 우포(藕浦)의 말바위 위에 반구정을 지어 풍류를 즐겼다.  

 

산길을 건너면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곳에 합강정(合江亭)이란 정자가 있다. 이곳에 살았던 조임도는 장현광(張顯光)의 제자로 학문에 전념해 인조반정 후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됐다. 한때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고 인조·효종 때에는 대군의 사부로서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이곳에 은거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큰 은행나무에 사람 낯을 가리는 개 한 마리가 묶여 있다.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정자에 머물며 자연을 벗 삼아 여생을 맞는 일이 낙동강변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속세의 정자이든, 절간의 암자이든 시간의 흐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는 일처럼 자연스러움도 없으리라. 돌아오는 길 능가사에서 자비로운 부처님 오신 날 보살들의 공양을 받고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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