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는 시대적 흐름이다

최병문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7-17 08: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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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문 정치칼럼 ‘사람세상’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 ‘고교체제 개편 3단계 로드맵’을 통해 2020년까지 현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특성화고 등으로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개편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전국 진보성향 시·도교육감들도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거나, 그럴 게 아니면 지정 취소 최종 권한을 교육감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등 자사고 즉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지정 취소를 개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전국의 42개 자사고 가운데 24개 학교가 올해 해당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받았다. 광양제철고 김천고 민사고 북일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하나고 현대청운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 8개교와 경희고 계성고 동성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안산동산고 이대부고 이화여고 인천포스코고 중동고 중앙고 한가람고 한대부고 해운대고 등 광역단위 자사고 16 곳이었다. 


그 가운데 11개교가 탈락해서 일반고 전환 절차를 밟게 됐다. 후속 절차로 청문이 진행되고 교육부 장관의 지정 취소 동의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전국 단위 자사고 중에서는 상산고가 유일하게 재지정 취소 평가를 받았다. 현재 교육부가 교육감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현 정부가 내건 대표적인 교육 공약이고,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주요 정책기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가 일반고의 황폐화를 가져오는 등 사교육과 다름없는 위협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사고 옹호론자들은 자사고가 모두 폐지될 경우 강남 교육특구 부활과 더불어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월성을 보장받으려는 수요자들에게 교육당국이 공교육은 포기하고 사교육이나 해외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하는 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현행 입시 위주의 고교교육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자사고는 자녀를 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우리 모두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부는 “일반고가 자사고에 비해 수준이 낮은 학교처럼 인식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자사고의 교과편성 자율권을 제한했다. 자사고 등장 이후 일반고가 황폐해졌다는 문제인식은 적어도 보수 진보 진영 대립의 산물은 아니다. 따라서 자사고 지정 취소 이후 학생과 학부모들의 욕망을 고려한 일반고 발전 프로그램이 더욱 절실해졌다. 


서울시교육청의 2015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했을 때, 청문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일반고로 전환했던 관악구의 미림여고가 일반고 발전 프로그램의 단초를 제공하는 듯하다. 학교가 일반고 전환을 결정하자 당시 1학년은 절반에 달하는 100여 명이 전학을 갔지만 2016년 주석훈 교장이 취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사실 당시 서울 대부분의 자사고나 외고는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야자) 시키는 것 말고는 별로 하는 게 없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 성적 향상은 주변 사교육 학원들의 몫이었다. 


제일 먼저 학교당국과 학생 학부모는 서로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학교 수업을 학생 중심으로 재편했다. 수능 정시 위주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기주도 학습 역량을 발휘하도록 다양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과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수업을 토론과 발표 중심으로 바꾸고, 오픈북으로 경시대회를 여는 등 학생들이 문제해결 과정을 중시하도록 유도했다. 대학교수를 초빙해 ‘미래인재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대비 프로그램에 학생들은 적극 호응했다. 주석훈 교장은 “일반고로 전환한 뒤 교육과정이 다양해지고 학생 개개인의 자기주도 학습 역량도 훨씬 좋아졌다. 입시실적으로만 봐도 자사고 때보다 일반고로 들어온 학생들의 결과가 월등하게 낫다”고 말했다.


교육을 시장원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 자사고 폐지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평등과 공공의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험하다. 자사고, 특목고 폐지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말하는 ‘자사고 폐지는 바로 고교 하향평준화’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교육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공교육 체제 혁신 프로그램은 공공성을 보장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 교육의 형평성과 학생 개인의 행복을 중심에 두는 공교육 생태계 건설의 꿈. 모두 함께 꾸면 이루어진다.


최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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