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시작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19-06-19 08: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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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 계절의 맛, 또는 멋 보리수열매

 

‘장비 싸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하자면 여러 준비를 하게 되는데,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 도구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제 의견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는 그릇된 생각입니다. 도구, 장비는 작업의 성격과 일에 참여하는 사람의 일에 대한 숙련도, 그리고 환경에 따라 그 선택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작업에 대한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 도구 사용에 충실해야 합니다. 효율성이 높다고 판단해 미숙련 상태에서 복잡한 기계장치가 달린 도구를 도입하게 되면 그것에 종속돼 작업은 뒷전이 되기 십상입니다.


농사에 사용되는 핵심 도구는 호미와 삽, 낫 등입니다. 요즘 이 세 가지 도구만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은 없습니다. 반대로 이것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농사를 짓는 이들 또한 없습니다. 호미의 경우 이것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기계화된 도구는 없습니다. 그만큼 섬세한 작업에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아시다시피 호미는 모종을 심거나 김매기를 할 때, 그리고 농작물 캐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 사용 방법은 매우 쉬우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기능을 잘 살펴 이용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작업도구이지만 잘못된 사용이 습관이 되면 손목에 무리가 가게 되고 허리마저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호미의 오묘하게 생긴 모양새는 작업의 성격과 편의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수확을 기다리는 양파와 마늘


‘삽질하다.’는 삽을 폄훼하는 말이 아닙니다. 삽질의 대상과 목적이 빗나가 초래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한 한탄을 그리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삽질이 무척 고된 일이라는 뜻도 숨어 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고된 일을 한 탓에 성과가 없다’는 게 삽질하다의 의미라면, 도구와 목표하는 일의 상관관계를 작업의 시작단계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겨야겠습니다. 삽 본연의 기능은 땅을 파서 흙을 퍼 올리는 것입니다. 의외로 팔의 힘만으로 삽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식의 작업은 금세 힘에 부쳐 장시간의 작업에 적당하지 않고, 팔은 물론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가는 잘못된 습관입니다. 마치 골프를 칠 때처럼 작업 중에는 양다리가 안정적으로 지지해야 하고, 허리의 움직임으로 어깨와 팔을 리드해야 합니다. 땅이 단단하지 않더라도 삽을 깊이 박을 때에는 삽날 위쪽의 편편한 면을 발바닥으로 눌러주어 힘을 덜어야 합니다. 삽질을 수월하게 오래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자 작업 후에도 몸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방식입니다.


낫은 무척 위험한 도구입니다. 사람에게 익숙한 회전운동 대신 직선운동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자루 위에 달린 호모양의 날은 회전운동으로 당길 경우 반경이 넓어지면서 예측하지 못한 위치로 가기 쉽습니다. 낫을 든 한 팔만 사용해 원거리의 풀등에 휘두를 수 있으나 바람직한 방식은 아닙니다. 낫은 반드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직선으로 끌어들이면서 작업해야 합니다. 호미로 감당이 안 되는 뿌리가 깊이 박힌 긴 풀들을 벨 때 사용할 때에는 손목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습관적으로 손목에 스냅이 들어간다면 잘못된 방식입니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손목은 팔꿈치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이끌려가야 합니다. 이 또한 속목이 회전운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냅이 들어갈 경우 작업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깨가 같은 높이를 유지하며 당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고추 줄 띄우기


호미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섬세한 작업에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도구입니다. 삽과 낫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세 가지 도구를 통합적으로 기계화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낮추어주는 기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트랙터, 경운기, 관리기, 예초기 등입니다. 특히 관리기는 밭 갈기, 이랑 짓기, 비닐 피복, 제초작업 등에 사용되는 대중적인 도구입니다. 이름대로 농사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필수적인 기계입니다. 상대적으로 소형이어서 다루기도 쉽습니다. 이밖에도 농기계는 용도별로 무척 다양합니다. 농사의 다양한 개별 작업에 최적화된 형태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소형화되고, 사용법도 쉬워 작업과 재배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경우 도입해 영농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농 초기 도구 장만의 기준은 어떻게 세우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일까요? 우선 농사의 규모를 고려하여야 하는데, 저는 3천 평 이하의 소규모 자영농을 기준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트랙터는 무척 비쌉니다. 농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해도 도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트랙터 작업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경운기와 관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입니다. 특히 경지가 잘게 쪼개져 있거나 기본적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면,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입니다. 무엇보다 세밀한 경작지 관리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대형 농기계보다 소형이 적합합니다. 트랙터가 수월성에서 앞서는 것 같지만, 장기간 밭에 들여 사용할 경우 경반층이 강화돼 밭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단점이 있습니다. 더구나 3천 평 이하에서 얻게 될 예상 수익성에 대비한 수지타산을 따져볼 때 비경제적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귀농 초기일수록 경영효율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만 합니다. 농사에서 투자 기간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죠. 재배작물이 단일작물이고, 경작지 한 밭이더라도 트랙터 구매보다는 대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풀밭 사이에 참깨심기


그런데 정작 초기 귀농인을 괴롭히는 장비들은 대형장비가 아니라 소형도구들입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소형도구에서 장비 싸움에 매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톱 대신 전기톱이나 엔진 톱 아니면 그라인더를, 망치 대신 타카나 드릴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 말입니다. 농사를 짓자면 온갖 만들기를 스스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도구들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지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농가가 다른 도구 없이 집이라도 한 채 지을 만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자면, 솔직히 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소모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데 반해 사용빈도나 경제성에서 별무소용이라는 말씀이죠. 농촌 생활에서 고장 수리나 설치, 대행 등에 드는 비용은 도시에서보다 훨씬 부담이 크고 심지어는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이른바 DIY를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소소한 일에 비용부담이 큰 장비를 마련하기보다는 힘이 좀 들더라도 기본 도구를 활용해 작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엔진톱 구매를 결심하기 전에 그 사용의 빈도를 미리 따져본다면 합리적인 해결책 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밖에도 농작물 재배와 관련해 필요한 비품, 소모품들이 엄청나게 많고 농산물 가격에 비추어 고가인 경우도 많습니다. 종류에 따라 중고를 구매하는 것이 이득인 자재들이 있고, 새것을 구매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구매가 필요하지 않은 자재들도 있고, 소모품이어서 별수 없이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최선책은 없습니다. 다만, 모든 자재 구입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재배작물과 재배환경, 재배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인가를 늘 따져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버려야 할 생각도 있습니다. 장만해 놓으면 언젠가 쓸 데가 있다는 미신은 버려야 합니다. 벌레가 꾀기 시작할 때에 농약을 쳐야 효과가 높은 것처럼 꼭 필요할 때 장만해야 합니다. 물론 작물에 드는 병은 오기 전에 예방해야 하는 것과 같이 미리미리 마련해두어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대체로 이런 것들은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은 것들이므로 장비 싸움에 조바심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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