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04-03 08: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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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3월은 늘 새롭다. 아이들에게는 새 교실에서 새 친구들과 함께 새 선생님에게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늘 낯선 달이기도 하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가르치는 위치의 무게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경험상 대부분의 아이는 (크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자신의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른다. 교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 교사 개인의 매력 때문이기보다 가르치는 위치에서 오는 권위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누군가로부터 순수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위력을 알기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좀 더 철저하게 검열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체벌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훈육하는 도구로 장려되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 옛날을 그리워할지도 모르지만, 체벌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아동학대 행위다.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정말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친밀한 공간이라 여겨졌던 가정에서 맞아 죽음으로써 체벌에 ‘사랑’이라는 언어를 쓸 자격을 뺏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쉽게 ‘사랑’을 말하거나 쓸 수 없다. 언어를 가진 위치에 있는 자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문학, 사회, 관습 등)를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기에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언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주인공 팡쓰치는 13세에 글쓰기 선생 리궈화에게 처음 강간당한 후 “죄송해요”라고 얘기한다.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느끼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쓰치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설명할 언어를 갖기 않았기에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라는 리 선생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학에서 보아왔던 낭만적 사랑은 성관계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쓰치는 리 선생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리 선생의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반복될지 알지만 매주 쓰치는 리 선생을 찾아가며, 강간의 순간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있도록 하며 고통을 견뎌낸다.


쓰치의 고통이 언어의 부재에서 왔다면, 반대로 리 선생의 무기는 언어와 문학이다. 그의 궤변은 교단 위에서 합리와 낭만을 얻으며 문학의 은유와 상징은 그 근거가 되었다. 또한 성(性)에 대한 사회의 엄숙주의는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는 여학생을 강간하는 것이 그녀를 붙들어 둘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되도록 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강간을 당해도 피해자를 탓하고,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쓰치는 꽃뱀, 가정파괴범, 불륜녀로 취급받을 수 있으며,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행법상 13세 이상에 대한 성범죄는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 따라서 리 선생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린이한에 의해 쓰치가 당한 폭력은 ‘그루밍 성범죄’라는 언어를 얻게 되었다. 폭력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복잡하기에 언어를 생산해 내는 일은 중요하며, 언어를 가르치고 전달하는 자들, 특히 교사 또는 종교지도자는 말이 가지는 위력에 대해 성찰해야만 한다. 따라서 교사(종교지도자)에 대한 어린 학생(신도)의 동경과 존경을 낭만적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도록, 교사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보호할 의무가 있는 대상과 하는 ‘사랑’을 명백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처벌해야만 할 것이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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