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도 계모임을 하였네(1)

이병길 영남알프스학교 교사, 시인 / 기사승인 : 2019-07-24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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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역사문화기행

통도사 무풍교 입구에서 부도원 입구 선자(扇子:부채)바위까지 1.3㎞의 오솔길은 통도 팔경 중의 하나인 ‘무풍한송(舞風寒松)’ 길이다. 길의 왼쪽은 청류동천이요, 오른쪽은 소나무 산이다. 노송과 계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솔숲길이다. 철학자의 길, 사색인의 길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비가 오고 난 뒤 걸으면, 소나무 향기가 온몸을 간질이며 감싸고, 소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은 몸을 한 바퀴 휘돌며 지나간다. 느리게 사는 삶의 길이다. 산쪽의 바위와 석등, 비석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 계모임 이름이 보인다.


무풍교 아래 너럭바위에는 경인갑계와 하서면 난국계가 있다. 무풍교 석축 기증비에는 무오갑계, 갑자갑계, 경오갑계, 종계가 보이고, 무풍한송 길에는 산수계와 병인갑계원방함, 석등에는 무자갑계중과 임오갑계, 환성종계가 새겨있다. 그리고 부도원에는 무오갑계원보사불망비와 임자갑계원보사유공비가 있다. 모두 10여 개의 계모임 이름이 있다. 통도사에 새겨진 계의 모임은 크게 일반인과 스님 두 형태로 보인다.
‘계(契)’는 사람들의 모임, 사람들의 결합이다. 자생적인 사회 소모임 조직으로 협동과 연대, 형평성을 강조하는 사회 경제적인 모임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상호부조와 친목 그리고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모인다. 계는 순수한 한국의 단체 개념으로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정도로 오래된 조직이다. 그 계가 사찰에도 있었다.

 

▲ 통도사 무풍한송 길은 사색의 길이지만, 주변 바위에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이름바위가 많다.

풍류객으로 온 선비들, 계모임을 새기다

통도사를 찾아온 사람은 신앙을 위해서만 온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기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모임은 대부분 무풍교 주변 너럭바위에 있었던 듯하다. 일반인의 계모임은 친목 모임으로 생일계(生日契)과 시회계(詩會契)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너럭바위의 경인갑계와 난국계, 산책로의 산수계, 병인갑계 모두 4개다.


무풍교 너럭바위에 가장 먼저 1890년 출생의 모임인 12명으로 구성된 ‘경인갑계’가 있다. 첫 번째 계원은 신태호(申太皓 1890~1950)다. 그는 통도사 학림 및 하북보통학교, 통영여고, 해동중학교 교장과 일제강점기 마지막 통도사 주지를 헸던 승려이자 교육자다. 신태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 종교 부문에 포함돼있다. 그는 1941년 통도사 주지로 선출됐는데, 당시 통도중학교 김말복 선생(1909~1985)의 항일애국교육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42년 3월 22일 경봉스님과 함께 심우장 만해스님을 방문하기도 했다. 계원 중 최대붕은 1920년 6월 통도사 저축부에 근무했던 스님이다. 당시 통도사 김구하 주지는 물금역과 통도사 간의 자동차 경영을 계획하고 그 자금을 최대붕 등에게 빌려주고 차용증서를 차입시켜 자동차를 경영했다. 경인갑계는 이 지역 사하촌 출신의 계모임인 듯하다. 


무풍교 너럭바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글자는 구하스님이 쓴 “流水千年通度寺(유수천년통도사) 落花三月舞風橋(낙화삼월무풍교) 천 년 동안 물 흐른 통도사. 삼월에 꽃 떨어지는 무풍교”다. 바로 그 글자 주변에 임술년(壬戌年) 3월에 결성된 하서면(下西面) 난국계(蘭菊契) 명단이 있다. 하서면은 지금의 양산 원동면 지역으로 난국계는 1922년(일제강점 13년) 상사(上巳:음력 3월 3일)에 난초를, 중양(重陽:음력 9월 9일)에 국화를 보면서 시가(詩歌) 따위를 읊는 음영(吟詠)을 하기 위한 모임인 듯하다. 첫째 줄에 34명, 둘째 줄에 32명, 셋째 줄에 27명, 모두 93명의 이름과 호(號)가 새겨져 있다. 통도사 이름바위 중에 단체로 가장 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무풍교 너럭바위는 풍류객들의 시회 연회 장소로 방문객들의 이름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다.


처음 등장한 인물은 추포(秋圃) 정우상(鄭友尙)이다. 그는 1847년 1월 8일생으로 하서면 내포동에 살면서 1915년 10월 2일 의생면허 5590번을 취득한 사람이다. 일제는 1913년 11월 15일에 의생규칙(醫生規則)이라는 법안을 반포했다. 의생의 자격은 20세 이상인 조선사람으로 이 규칙이 시행되기 전에 조선에서 2년 이상 의업에 종사하고, 일정한 수속을 마치고 의생면허를 교부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또, 이 규칙에 따라 기한 내에 신청한 사람에게는 영구면허를 발급하고, 그 뒤는 이 규칙의 부칙에 의해 한년면허(限年免許: 5년 이내)를 수시로 발급했다. 의생규칙은 일제가 1910년 조선을 합방하고 나서 식민지 조선인을 수탈하기 위한 최소한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구상한 법안이었다. 당시 서양식 교육기관에서 배출된 조선인 양의사가 144명으로 태부족이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전통의학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신뢰가 돈독한 것 등을 깊이 고려해 만든 제도였다. 그러나 의생(醫生)이라는 명칭이 의사(醫師)나 의사(醫士)보다 낮은 호칭이고 한의사의 수준을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여긴 수많은 유의(儒醫)들이 의생면허(醫生免許)를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일제강점기 때 의료시책이 서양의학 체제로 돼 있었으나, 의사가 크게 부족하고 의사를 갑자기 단기 양성할 수가 없어서 의사가 확보될 때까지 궁여지책으로 준의사격으로 만든 것이 의생제도다. 이들은 서민 의료에 많이 공헌했다. 의생제도는 1944년 폐지됐다. 정우상은 하서면의 의생으로서 나름 유력자이기에 아마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온 듯하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세 번째는 무풍한송 길 초입에 있는 ‘산수계(山水契)’다. 상하 두 줄로 16명씩 홍우은, 김우현 등 총 32명의 이름이 있다. 세월과 바위의 특성 탓인지 이름 읽기가 힘이 든다. 아마도 난국계와 비슷한 계였던 모양이다. 나옹화상의 “청산은 나를 보고...” 시비 뒤쪽에 ‘병인갑계원 방함(丙寅甲契員芳啣)’명단이 있다. 병인생(1866년)들이 그들의 회갑(回甲)을 기념해 병인년(1926년) 3월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12명의 이름과 지역이 새겨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달성, 청도, 영산, 동래, 연안, 청주, 동래, 김해, 충주, 경주, 분성, 예산, 김녕 등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였다. 감역(監役)은 김해(金海)의 김채우(金埰佑)였다.

 

▲ 무풍교 너럭바위에는 난국계 회원 명단 93명의 이름과 호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스님도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해 계모임하다

스님들의 계모임은 출가자 모임과 보사활동을 위한 계모임 두 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계모임은 친목일 수 있지만, 경제적 성격이 더 강한 것이었을 수 있다. 통도사 갑계 모임 중 구성원들의 출생년 혹은 출가년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임자갑계(부도원, 1852년), 무오갑계(부도원, 무풍교석축비, 1858년), 갑자갑계(무풍교석축비, 1864년), 병인갑계(산책로, 1866년), 경오갑계(무풍교석축비, 1870년), 임오갑계(석등, 1882년), 무자갑계(석등, 1888년), 경인갑계(너럭바위, 1890년)다. 그리고 1920~30년대 당시에 구성돼있던 계의 모임은 무오갑계, 갑자갑계, 경오갑계, 임오갑계, 무자갑계, 난국계, 산수계, 종계, 환성종계였다. 이같이 많은 계의 모임이 통도사에 있었다. 시기로 보면 갑계는 1852년(철종 3)부터 1890년(고종 27)생 출신이 주축이 됐다. 이밖에 기록되지 않은 갑계도 이 이전과 이후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풍한송길 석등의 무자갑계중과 임오갑계중, 환성종계중은 그 명단을 알 수 없으나 모두 본사(本寺)가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통도사 스님들의 모임인 사찰계로 볼 수 있다. 임오년은 1882년생, 무자년은 1888년생을 기준으로 한 모임이다. 특히 환성종계중은 환성 지안스님(喚醒 또는 喚惺,1664~1729)의 화엄학의 계보를 잇는 스님들의 모임인 것으로 추정된다. 환성당 지안은 조선 중기 화엄학의 일인자로 손꼽히며 일생을 강설과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고승이었다. 지안스님의 법은 ‘설송연초’, ‘호암체정’, ‘함월해원’, ‘호월성눌’, ‘포월초민’스님이 환성의 5대 문파를 구성해 진경시대 불교를 활짝 열었다. 1912년 9월 30일 ‘통도사본말사법’에 따르면 통도사 본말사의 주지는 환성(喚惺) 지안선사(志安禪師)의 법륜이어야 한다고 돼있다.(다음호에 계속)

 

▲ 병인갑계원방함((丙寅甲契員芳啣) 이름바위


이병길 시인, 울산 민예총 감사, 역사문화 질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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