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림녹화 1등 공신

이승재 (주)나무와 에너지 대표 / 기사승인 : 2019-07-18 08: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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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에너지 이야기

국토 면적의 약 63%가 임야인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 네 번째로 산림비율이 높은 나라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조림성공국가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세계 4대 조림성공국가로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우리나라를 꼽았고 1982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인정했다. 대한민국은 조림강국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됐던 우리나라의 산은 지금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숲으로 뒤덮여 있으니 우리 국민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 50년 전 민둥산이었던 울주의 산들은 지금 울창한 숲으로 성장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남알프스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일관적인 정책 의지’를 꼽는다. 여기에 더해 ‘박정희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결정적인 조림 성공의 원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평가는 합당한 것일까? 필자도 1960년대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산림녹화를 위해 단행한 적절한 조치들이 오늘날 푸른 숲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을 갖지 않는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을 통해 산림정책의 전환점을 마련했고 나무를 심는 일에 그치지 않고 마을 지도자 교육, 양묘, 사방 등을 병행해 산림녹화가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하도록 한 공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자연생태 복원을 정권의 의지로만 해석하는 일은 편협한 분석이다. 치산녹화가 가능했던 경제적, 사회적, 대내외적 배경이 제대로 파악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한 구성원을 기념해야 한다. 


학자들은 1960, 70년대 경제 상황과 에너지 소비의 변화를 산림녹화의 성공배경으로 분석한다. 즉 1970년대까지 비약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정용 연료로 사용했던 장작과 숯 등 목질계 연료의 사용이 줄었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가 감소한 것도 숲의 나무가 베어지는 속도를 조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방 직후 장작으로 사용된 나무는 1000만㎥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임목축적의 17%나 되는 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미 1958년에 도심지에서 사용되는 장작과 숯을 강력하게 단속했지만 1950년대에 장작사용량은 전체 에너지의 90% 이상이었고 1960년대에도 66%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산에 나무를 심어도 민둥산인 탓에 장마와 홍수를 어린나무가 견디지 못했고 법보다 무서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심는 속도보다 빠르게 나무를 잘랐다. 


쉽지 않아 보였던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결정적 전환이 모색됐다. 강원도 탄광지대를 관통하는 철도노선이 개통되기 시작했다. 1957년 충북 제천에서 강원도 함백탄광을 연결한 함백선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황지선이, 1971년엔 태백선 전 구간이 개통됐고 1973년에 사북탄좌를 연결하기 위해 길이 4.5kn 최장 터널을 뚫은 고한선이 완성됐다. 대한민국 ‘검은 심장’ 태백을 잇는 철도들은 강원도 탄광의 무연탄을 전국으로 실어 날랐다. 1963년 황지선 개통 후 석탄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었고 1966년에는 1161만 톤이 생산되면서 드디어 석탄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 


목질계 연료의 사용량이 가파르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1970년대엔 장작과 신탄이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로 현격하게 줄었고 1990년대 이후 1% 이하가 됐다. 무연탄이 보급되면서 산림녹화는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에 고작 1헥타르당 9㎥, 1970년에 10㎥에 불과하던 헥타르당 평균 임목축적이 1980년에는 22.2㎥으로 두 배가 증가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성장하다가 2010년에 무려 100㎥를 돌파했다. 세계는 이 드라마틱한 민둥산의 반전을 기적이라고 환호했다. 2015년 말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임목축적량은 9억2481만㎥으로 1946년(5644만㎥)에 비해 16.4배, 1973년(7447만㎥)에 비해 12.4배, 2003년(4억6817만㎥)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고 산림청은 설명한다. 이 푸른 숲 조성의 배경은 무연탄이고 에너지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든 탄광 노동자들이야말로 산림녹화의 날에 기념해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인정한 4대 조림국가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 뉴질랜드 그리고 독일이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연합국의 폭격으로 전후 상당 부분의 산업시설이 피해를 봤고 300만 주택의 복구를 위해 나무의 수요가 급증했다. 서독 정부는 전쟁 직후 전국에 조림을 독려했고 전쟁으로 현격하게 줄어든 남성 인구를 대신해 여성들이 산에 나무를 심었다. 장비도 부족할 때에 추운 산에 올라 식목을 한 그녀들의 노력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숲의 피해는 빠르게 복구돼 갔고 독일은 현재 세계 최고의 조림국가라고 평가받는다. 그럼 독일이 산림녹화를 기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949년 독일연방은행은 50페니히 동전 뒷면에 어린 참나무를 심는 여인을 새겨 넣었다. 도안은 공모를 거쳐 화가 베르너(Werner)가 맡았다. 

 

▲ 1949년 발행된 독일 마르크 동전 50페니히 앞뒷면. 출처: www.ma-shops.de


오늘날 세계 최고라는 독일의 산림녹화에 대해 그들이 ‘1800년대 비스마르크의 철혈통치 덕분이었다’고 표현하는 걸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장기집권했던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의 단호한 의지였다’고 평가한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통에 많은 남성들이 죽거나 다치자 산에 올라 나무를 심었던 여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독일 숲은 없었다는 걸 기억하자’고 마르크 동전에 새겼다. 그뿐 아니다. 2016년에도 독일 니더작센주 주지사가 1950년대 산에 올라 나무를 심었던 여성 30명을 초대해 과거를 회상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산림녹화는 인위적으로 숲을 가꾼 흔적이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 숲은 복구됐다. 우리 국토의 울창한 조림을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평가하는 시각은 숲이 가진 사회경제적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1등 공신을 꼭 선정해야 한다면 그 자리엔 무연탄이 올라야 하고 강원도의 막장에서 탄을 끌어올려 전국의 겨울 한파를 견디게 만들어 준 광산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어야 한다.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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