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억새길 따라 걷는 가을산행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19-10-23 09: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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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울산의 간월재는 매년 가을이 되면 전국의 산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파도를 떠올리면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을 피해 조용히 홀로 간월재로 향했다. 

 

올해 가을에 유난히 태풍 소식이 잦았다. 링링, 타파, 미탁 세 개의 태풍이 직접 영향을 끼쳤다. 많은 양의 비와 거센 바람의 영향으로 등로가 많이 무너졌다. 돌, 나뭇가지 등이 물 따라 흘러와 있었다. 


상북면의 논을 지나갈 때 본 누운 벼들이 떠오른다. 여기저기 낙과 소식도 들었다. 누군가가 배추농사를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었더라는 소식도 들었다. 농민들이 힘들어지면 우리의 밥상도 위태로워진다. 공룡이 멸종하던 그때보다 지금 기후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데, 연달아 오는 태풍 소식은 정신을 차리라는 지구의 목소리 같다. 


오르는 길, 초록의 나뭇잎들이 빨갛게 변해보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뒹굴고 있다. 간월재에 도착하니 억새라고 별 수 있을까. 거센 가을 태풍에 고개 꺾인 풀이 다수다. 그래도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여기저기 송송 피어있다.

 

▲ 간월재에 그득 핀 쑥부쟁이
▲ 간월재와 간월산
▲ 간월재의 억새군락지


적당한 곳에 앉아 챙겨온 햇사과와 커피를 꺼낸다. 가져온 햇사과를 보니 사과나무 주인의 한숨이 묻어난다. 상북면 소호마을에 햇사과를 사러갔었다. 괜찮다고 해도 손사래해도 어차피 못쓴다며 가져가서 먹으라며 씁쓸한 미소로 떨어진 사과를 그득 담아주셨다. 일 년 농사의 수확으로 한해벌이가 되는 농부에게 수확철 태풍은 야속하다. 씁쓸한 마음과 달리 아삭한 사과가 달고 맛나다. 이 달고 향긋한 사과를 계속 먹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떠올려 본다. 

 

▲ 간월재에서 먹는 소호사과와 커피

 

뾰족한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걸음을 시작한다.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이 녹록찮다. 길을 오르다보니 억새의 자리를 관목들이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특히 미역줄나무가 많이 보인다. 숲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가을철 억새바다를 사랑하는 필자에게는 여간 아쉽다. 허나 자연이 하는 일을 억지로 어찌할 수 있을까. 억지스러움엔 항상 뒷탈이 따라온다. 

 

▲ 간월재 대피소
▲ 간월재 대피소 방향
▲ 간월재 억새평원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숨이 차다. 간월재에서 능선을 따라 영축산까지 쭉 걸을 심산으로 아침에 일찍 출발했더니 눈이 까무룩하다. 혼자 하는 산행은 쉬고 싶을 때 쉬어가면 그만이다. 가방에서 해먹을 꺼내 낮잠을 한숨 청한다. 행복은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또 이렇게 느낀다. 


반시간 남짓 달콤한 낮잠을 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신불산 정상에 도착하니 모친의 전화가 왔다. 무거동에 큰 비가 오고 있는데 거기는 괜찮으냐고 비 소식을 전해주신다. 흐리긴 해도 따뜻한 바람이 비가 오려고 그랬나보다 싶다. 

 

▲ 구름이 지나가는 간월재
▲ 길가에 핀 용담
▲ 비구름이 가득한 신불산 정상

 

신불재쯤 도착하니 구름이 바람과 함께 거세게 밀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가 오면 그 비를 맞으면 될 일이다. 서둘러 이 산행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 신불산상벌과 영축산

 

▲ 신불산상벌에서 내려다본 울산-함양간 고속도로
▲ 신불산에서 내려다본 신불재

 

▲ 신불산에서 내려다본 신불재와 백발등


신불재를 지나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 삼남면 가천리 쪽으로 내려다보니 울산-함양 고속도로 현장이 또렷이 보인다. 신불산을 뚫고 지나가는 그 길은 배내골로 연결된다. 백년 남짓 사는 인간이 무어라고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융기와 침식을 거친 산을 단지 편하려는 이유로 뚫어버리는지, 가슴이 먹먹하다. 편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치며 사는가. 필(必)환경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수적인 것과 욕망으로 소유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 신불산을 오르다가 본 간월재와 간월산

 

▲ 신불재에서 신불산휴양림방향을 내려다보며
▲ 신불재의 억새평원

 

능선을 따라 걸으며, 산에게 가슴으로 사죄한다. 필자를 포함한 무지한 인간들의 폭력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달라고, 그리고 이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이 평화롭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쑥부쟁이와 구절초

 

▲ 해먹에서 청하는 낮잠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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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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