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우리는!

김유신 기억과기록 회원 시민 / 기사승인 : 2019-05-01 09: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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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지난 4월 울산지역에서는 삼일운동이 일어난 날짜에 맞춰서 많은 행사가 있었다. 우선 울산박물관에서는 울산에서 처음 일어난 언양 삼일운동의 날짜인 4월 2일에 맞춰서 특별전 ‘울산의 만세운동?봄날의 뜨거운 함성’을 개관했다. 이 특별전에서는 울산지역의 삼일운동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손응교, 사립보성학교와 성세빈, 외솔 최현배, 서덕출 등에 대한 전시도 하고 있다. 거기에 특별전과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울산의 만세운동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언양, 병영, 남창에서는 삼일운동 재현행사와 함께 여러 가지 이벤트를 했다. 재현행사는 매년 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100주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조금 더 다양한 부대행사가 이루어졌다.


삼일운동은 전국에서 약 2000회 이상의 시위가 일어났고, 연인원 2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그야말로 전국구의 독립운동이었다. 100년 전 울산도 전국적인 흐름 속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났다. 언양에서는 4월 2일, 병영에서는 4월 4일과 5일, 남창에서는 4월 8일에 일어났다. 근처 양산에서는 울산보다 조금 빠른 3월 27일 양산시장 만세운동를 시작으로 3월 30일, 4월 1일에 일어났고, 부산 동래군에서는 4월 9일과 10일에 일어났다. 즉, 비슷비슷한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만큼 만세운동의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흔히 삼일운동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인 오일장이 서는 날 일어나기도 하고, 야밤에 산에 올라가서 만세를 외치고 내려오기도 하고, 학생들이 하교 후 밤에 기숙사에서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이렇게 만세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는데 현재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난 삼일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거나 상징처럼 여기는 지점은 비슷하다. 일단 많은 인원이 만세시위에 참가를 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200명~1000명 정도가 참여를 했으면 ‘우리 지역에서는 전국에서 봐도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만세운동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또,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병영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사립일신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올린 것이 신호가 돼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병영에서는 삼일운동 재현행사를 할 때 동 대항 축구대회를 하기도 하고, 축구공이나 축구와 관련된 것을 병영과 연결하기도 한다. 현재 울산박물관 특별전 병영 삼일운동 전시장 안에는 ‘축구공’이 전시돼 있다. 즉 축구공이 병영 만세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렇게 참여 인원이 많다거나,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1919년 그날 거리에 나와 만세를 외치고 싸웠던 사람들은 가려지게 된다. 3월 26일에 있었던 경북 군위군 의흥면 읍내 시장 시위의 경우 조성우라는 사람이 혼자 준비를 해서 시장에 나가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조기에 진압되면서 만세운동이 확대되지 못하였고, 결국 그 참가인원이 10~5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참여를 한 것도 아니고, 축구공과 같은 상징이 있지도 않다. 이렇게 어떤 조직 없이 혼자서 만세운동을 준비했다고, 조기에 진압되었다고, 그 참여 인원이 적다고 해서 이 만세운동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삼일운동으로 체포되고 법정에 서게 된 사람들은 모두 재판을 받고 판결을 받게 되었는데, 그 판결문을 살펴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만세를 외치니까 같이 외쳤다”, “독립 만세라고 외치길래 독립이 된 줄 알고 만세를 외쳤다”하는 식으로 진술을 했다. 이들이 일본군경에 맞서기 위해, 독립을 위해 싸우고자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삼일운동의 의미가 퇴색될까? 이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진술이 더 현실적이고, 더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삼일운동은 수많은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의 참가로 일어났다. 그 모습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결연히 떨쳐 일어나 만세를 외치고 참여를 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삼일운동의 의미가 퇴색될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세를 외치고, 싸웠던 모습을 더 정확하게, 그때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역을 자랑하기 위해서, 우월감을 내세우기 위해 그때를 살아가며 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을 정형화, 획일화시키고, 입맛에 맞게 바꾸는 것이 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삼일운동’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은 소수의 지배자 또는 엘리트가 계획하고 주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민중들이 거리에서, 산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만세”를 외쳤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삼일운동은 큰 의미를 가지고, 소중한 기억, 소중한 역사가 되었다.


이제는 삼일운동에 대해서 “우리 동네에서‘도’ 이렇게 했어!”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했어”라는 식의 생각과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유신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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