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사냥한다

조숙 시인 / 기사승인 : 2019-12-04 0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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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오소영 감독의 <더 한복판으로> 다큐 시사회가 있었다. 재일한국인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에 맞선 이야기다. 소재로 보면 안 봐도 짐작이 가지만 다큐는 섬세하게 접근했다. 배경이 된 오사카는 부산 울산 제주에서 건너가기 가까운 거리 탓인지 일제시대 이전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2세대를 지나 3세대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나서 한국어보다는 일본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일본인 중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너희 나라로 가라, 죽인다 같은 말들을 하는 집회가 오사카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발언을 처음 듣게 된 사람들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는 혐오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신혜 씨는 재일한국인 2.5세대인데 한국인에 대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방송에 나가고 그 혐오발언이 부당하다는 항의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부터 수많은 악성댓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혐오와 차별에 맞서서 재판을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의 가와사키 시에서 공개적 차별 발언에 대한 금지 조례를 만들게 했다. 


이것은 한일 간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다. 주인공 이선혜 씨는 혐오발언을 하고 왕따를 시키는 이유는 그것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 8명이 공식적으로 그만두겠다는 글을 남기고 멈췄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아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구하라와 설리의 죽음을 불러온 혐오발언들이 자신의 재미를 위해 몰아붙인 죽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여러 명이 한 명을 향해 창과 칼을 들고 사냥을 하듯. 


‘더 한복판으로’에 등장하는 재일한국인들은 사람들이 혐오발언을 하는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지 못한다. 그런 행동을 한다면 더 심각한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말에서 짙은 슬픔이 가슴 아래로 무거운 안개처럼 덮이는 것을 느꼈다.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엄두도 못 낸다는 말이다. 만약에 한국인이 아니라 백인이라면 이런 차별과 혐오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차별에 대한 자각으로 한국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연대하게 되는데 거리에는 동성애를 저주하는 근거 없는 문구들이 플래카드에 넘쳐났다. 기독교단체에서는 저주를 하는 문구를 내걸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 가슴 밑으로 짙게 드리운 슬픔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겪어온 차별들이 가슴을 뚫고 올라오는 신호였다. 스스로 외면해온 차별의 고통이 일어서고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운전할 때 받는 위협 같은 것 뿐 아니라 택시를 탈 때도 무시하는 언행을 겪고는 한다. 한 번은 모임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여자들이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점심이나 사먹으며 놀러 다닌다고 훈계를 시작했다. 네 명이나 되는 남편을 둔 여자(?)들은 모두 대화를 멈추고 목적지 식당까지 야단맞으며 도착했다. 버스를 탈 때도 방향이 헷갈리도록 돼있는 버스 노선이 많은 울산의 노선 탓에 기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법원 가냐고 물으면 대부분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짧게 한다. 다시 물어보면 눈을 마주치고 화가 난 표정으로 빤히 마주본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차별의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일 뿐이다. 차별받을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차별의 이유다. 피부색이 짙어서, 서울이 아니라서, 백인의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국가 출신이라서, 여성이라서, 발음이 남과 달라서. 보다 심각한 것은 심심해서다. 재수가 없으면 아무나 걸린다. 사냥의 대상이 돼 무차별적으로 혐오발언의 창과 칼에 포위당하고 피를 흘린다. 마주보고 저항하려니 피곤이 올라온다. 그래도 슬픔에 부끄럽지 않도록 힘을 내야 할 것이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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