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시민은 시민이 아닌가?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기사승인 : 2019-07-10 09: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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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은 그의 책 <타인의 추방>에서 ‘미래에는 경청자라는 직업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경청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청을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좇아가지 않고, 다른 사람이 비로소 말을 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얼마 전 울산문화재단에서 ‘울산 문화예술지원체계 개편 토론회’가 열렸다. 경청의 측면에서 본다면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바람직한 모습이다. 다만, 문화예술인들이 오후 2시라는 생업에 쫓겨야 할 시간에 진행되는 토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재단에서 찾아가는 토론회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울산문화재단은 빈약한 예산과 인력구조로 이런 것들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근 포항문화재단의 절반, 밀양이나 거제 같은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 정도의 인력으로 광역시 재단 업무를 수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울산문화재단에 대해 울산시 사업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이라도 당장 시 문화예술과의 예산을 대폭 옮겨오고 그에 걸맞는 인력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울산문화재단이 제 모습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울산시에서 문화예술단체에 주는 보조금의 편향성 때문이다. 꾸준히 제기된 문제임에도 여전한 울산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경청자’로서의 행정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속한 울산 민예총은 그간 저항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예술로 대변해 왔다. 부정한 정권에 맞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예술로 그 감동을 키워나갔으며,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거리에선 분노의 몸짓과 노래로 그들과 함께 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지방정부에서 울산 민예총은 홀대를 받아왔다. 시청에 편성된 예산은 문화예술을 하는 타 단체와 비교해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지방정부가 바뀐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냐고 반문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요 십분의 일 비율은 바뀌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각종 분과, 즉 문학, 미술, 국악, 춤과 같은 각 분과위원회에 편성된 예산은 울산민예총의 경우 아예 한 푼도 없으며, 이는 지방정부 교체 이후에도 여전하다. 


울산시의 예산은 울산시민들의 것이지 정객들과 관료들의 것이 아니다. 시민의 예산인 만큼 그 쓰임에 있어서도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울산시 문화예술과에 편성된 문화예술 예산을 보고 있노라면 저항하는 시민은 시민이 아니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정권에 비판적인 단체와 개인을 보조금으로 길들이고 말 잘 듣게 만드는 것이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의 핵심이요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울산시에 편성된 문화예술 예산은 그 이전 보조금으로 단체와 개인을 길들이던 시절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에 비판적인 단체와 개인 역시 시민이다. 언제까지 말 잘 듣는 시민만 시민이라 여기고 이들에 대해 편향적인 예산 편성을 고집할 텐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이런 비판에 대해 울산시는 회원 수의 차이를 얘기하며 회원이 많은 단체에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게 저항하는 시민을 옭매는 이유다. 그동안 시에서 풍족한 보조금을 받은 단체가 매일 저항만 하며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불의와 싸워 온 단체보다 회원 수가 적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만일 저항하는 예술을 하는 회원 수가 더 많다면 세상은 너무 쉽게 변화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균형 있는 예산 편성이다. 즉, 전체 문화예술예산을 놓아두고 단체의 운영을 기준으로 기본예산을 정하고 회원 수에 따라 적정한 규모의 예산을 배분하는 것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십분의 일은 너무하지 않느냔 말이다. 더군다나 각 예술 장르에 대해 전혀 예산 편성이 없는 것도 정말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말하기도 민망해서 정말 안 하려고 했지만 회원 수로 따져도 그 정도는 아니다. 


이인호 울산 민예총 문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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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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