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거부한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12-05 09: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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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싱가포르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이다. 내 좌석은 뒷자리 복도 쪽 좌석이다. 싱가포르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여섯 시간으로 짧지 않은 시간이기에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화장실 가기도 편하게 주로 복도 쪽 좌석을 선호한다. 


자리를 찾아가니 내 좌석에 이미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있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제 자리인 것 같은데요...”하고 말을 건네니 아주머니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옆에 친구가 있어 같이 앉아 가고 싶다고 난감한 듯이 내게 자리를 좀 바꿔 앉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한다. 순간 고민한다. 그런 사정이 있다면 먼저 본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리 배정 후에 부탁을 하면 될 것을 미리 남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좀 실례이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평소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고 많이 연장자라 그냥 알았다고 하고 안쪽 자리에 앉는다.


그냥 잠이나 푹 자야지. 하지만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옆 아주머니가 자리를 바꿔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자꾸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괜히 말을 섞고 어설픈 일회용 친분을 쌓는 일은 내겐 참 곤욕이다, (예쁜 여자는 제외다.)


여섯 시간 동안 옷깃을 스치고 살갗을 접촉하며 가야 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가뜩이나 낯을 가리는 내가 처음 본 사람과의 대화가 편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대충 대답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싱가포르에는 왜 가느냐, 혼자 가느냐, 어디서 묵느냐 등의 질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결혼은 했느냐, 직업이 무엇이냐 등의 질문이 쏟아지며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옮겨간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대답하고 있는데 이번엔 아이가 몇 명이냐고 한다. 한 명이라고 하니 둘째는 계획이 없냐고 물어본다. 지금은 전혀 없다고 대답하니 5초 동안 날 아련하게 쳐다보더니 결국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둘은 낳아야지.”


이런,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어른들에게 보통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그냥 “네, 나중에 기회 되면 낳아야죠”하고 대답하면 된다. 그러면 그렇게 대화가 짧게 마무리됐을 것이다. 마치 결혼 전에 어른들이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어보면 할 생각이 없더라도 “네, 곧 해야죠”라고 하는 것이 현명한 대답인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내 솔직한 답변 때문에 아주머니의 경험담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한 명은 외롭다느니, 커서 누가 효도할지 모른다느니, 그러다가 연예인 누구누구를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단다. 아이가 부모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 한 명 더 만들라니 미칠 지경이다. 이제 태어난 지 두 해도 안 지난 아이의 죽음을 생각해야 하다니 갑자기 출장 가는 하늘길이 먹구름으로 가린 듯이 먹먹하게 어두워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덜컥 둘째가 생길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모래 위의 성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위태롭게 서 있을 뿐이다. 그렇게 불안한 미래 때문에 아이를 내 노후를 책임져 주고 외로울 때 함께 할 든든한 담보로 생각하며 마치 보험 가입하듯이 두 명은 낳으라는 그 아주머니의 말이 전혀 납득가지 않는다. (차라리 아내를 한 명 더 들이라고 했으면 귀 기울여 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나도 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먼저 살아온 내가 앞으로 살아갈 아이에게 그저 나이만 많은 친구처럼 약간의 조언 정도 해 줄 수 있고 그것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내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그저 아이가 잘못되면 내가 힘들기에, 둘은 낳아야 하나라도 잘 되면 자식 덕을 볼 수도 있기에 등등 온통 이기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내 행복을 위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이를 독립적인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소유물로 바라보는 위험한 생각이다. (사실 이런 거시적 이유보다 육아가 너무 힘들다. 똥 기저귀를 또 갈아야 한다니...)


그렇게 한참을 내게 둘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아주머니는 뒤늦게 기내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승무원에게 왜 기내식이 없냐고 따지더니 결국 메뉴판에 있는 컵라면을 주문한다. 덕분에 나도 하나 얻어먹었지만, 아주머니의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인지 정인지 모를 조언에 출장 가는 길이 영 편치 않다. 둘째, 꼭 낳아야 하나.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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