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 거 같은 사람, 잘 됐으면 하는 사람

이인호 시인 / 기사승인 : 2020-09-02 09: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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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세상

며칠 휴가를 보냈다. 휴가는 보통 다녀오는 일이 많은데 이번 휴가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저 보냈을 뿐이다.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틈틈이 책도 좀 읽고 글도 써 가며 마음을 쉬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가 쓴 글을 큰아이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았다. 


굳이 어려운 애기를 하지 않아도 아이가 하는 말은 단순하고 정확해서 엄마의 소설은 감동이 없다고 했고, 아빠의 시는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잘 될 거 같냐고 넌지시 물었을 때 아이는 앞으로 더 잘 될 거 같은 건 엄마지만 솔직히 더 잘 됐으면 하는 건 아빠라고 대답했다. 음 이 정도면 거의 줄타기의 고수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했을 때 둘 다 좋아라고 퉁 치고 넘어가는 수준을 넘어서서 누구도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다니.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화의 기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입장의 다름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떠나 아예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되고 있다. 굳이 덧셈의 정치를 해도 모자랄 시기에 서로 뺄셈의 정치를 하고 있으니 더 피곤해지는 건 그 안에 끼인 사람들이다. 원래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야 그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지만 거기 끼인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자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내게도 더 잘 됐으면 하는 정치 집단이 있고, 앞으로 더 잘될 거 같은 정치 집단이 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더 잘 됐으면 하는 곳은 속으로나마 응원을 하게 되고 더 잘 될 거 같은 곳은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걔 중 어느 누구도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 같지 않아 안타깝다. 쉽게 줄을 세우고 선을 만들고 그렇게 어떤 지지자 그룹이 만들어지는 줄 착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순수하고 단순한 진실은 좀처럼 순수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단순하게 살 수 없다. 하나의 행동이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그 경로에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하나의 결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방이 있음에도 그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수한 모습을 맞닥뜨린다. 미리 얘기해지만 적어도 그 상대란 말이 통할 수 있는 상대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하는 건 대화가 아니다. 선언이지. 그래서 어떤 선언을 보면 진즉에 저러지 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선언을 해야 하는 대상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점점 더 쪼그라든다면 그 때부턴 선언이 아니라 독백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독백 취급을 받는 선언을 무수히 지켜봤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좀 대화를 해보자.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0년. 반백년이 지났지만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한 노동환경과 코로나로 인해 더욱 더 심각해지는 이 고용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좀 진지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켜가면서 말이다.


이인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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