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세기의 번개팅’

최병문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7-03 09: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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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문 정치칼럼 ‘사람세상’

2019년 6월 마지막 날, 판문점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 회동이 이루어졌다. 정상회담에 요구되는 여러 고려사항, 취재, 경호, 의전까지 아무런 사전 조정 없이 진행된 파격 그 자체였다. 스스로 세상을 관통하는 매스미디어가 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판문점 깜짝 회동을 제안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교착상태에 빠져있었고 국면 전환의 동력이 매우 절실한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세기의 번개팅’에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 호응하면서 30여 시간 만에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적 만남이 성사됐다. 


종일 티브이를 지켜본 나는 무척 놀랍고 흥분되면서도 한편 허탈했다. 나 같은 보통사람도 저 지도자들처럼 아무 제재 없이 남북을 오가며 서로 속 터놓고 맘껏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 정치가 모든 것이구나. 세계 최강대국이든 지구상 최후의 공산왕조국가든 수뇌부 정상들이 결심하면 아무리 크고 복잡한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구나. 그 엄혹한 분단의 현장, 정전협정 후 66년간 얼어붙어 있던 그곳 판문점에서 땅따먹기 공기놀이하듯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악수하고 미소짓는 전환시대의 역사를 맘대로 써나갈 수 있구나. 


남북미 정상들의 정치 행위를 지켜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이전 냉전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반통일, 반평화세력들의 저항 따위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에 맡겨두고 우리 민족끼리 남북 최고지도자가 그냥 평화통일을 선언하고 군사분계선 넘어온 민족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주말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는 나 같은 순진한 통일 로맨티스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 북미 정상의 만남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함께 양복 차림으로 비무장지대(DMZ) 오울렛 초소를 방문했다. 방한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비무장지대 미군초소를 방문할 때 예외 없이 군복을 챙겨 입었다. 한반도가 미국의 최전방이라는 미국민들의 인식에 호응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대북 강경 메시지를 던지고 군사적 대결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오랜 외교 문법과 관행을 깨뜨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말함으로써 그 자체가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두 정상은 정전협정 후 처음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만나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측 자유의집에서 한 시간 가까이 비공개 단독 회담을 하고, 양측이 2~3주 안에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팀을 꾸리기로 합의했다. 북미 두 정상은 하노이회담 노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상 간 포괄적 합의’를 한 후 실무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정상 간 최종 합의'를 이루는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미관계 정상화가 더욱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을 열었다. 만약 백악관 방문이 성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아본 최초의 미국 현직 대통령인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도 미국 땅을 밟는 최초의 북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부디 올해 안에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국교까지 수립하는 대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번 판문점 회동이 방아쇠 역할을 해서 개성공단도 다시 가동하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는 축포가 쏘아 올려지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사상 처음으로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남북미 3국 정상이 만나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 자체도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마치 리얼리티 쇼처럼 극적으로 진행된 이번 역사극에서 조연을 자처하고 북미 정상을 주연으로 기획 연출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 모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관련 협상이 문 대통령 의도대로 긍정 효과를 내면 좋겠다. 역사는 항상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을 입증해 주리라 믿는다.


최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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