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쇠부리 축제, 내년에도 꼭 구경 오세요”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05-16 0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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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울산북구문화원 부원장
▲ 이명숙 울산북구문화원 부원장(앞줄 오른쪽)과 북구문화원 봉사동아리 회원들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울산의 대표적인 축제인 ‘쇠부리축제’가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울산 북구청 광장에서 3일간 열렸다. ‘쇠부리’란 토철이나 철광석을 제련로에서 녹여 쇳덩이를 생산하는 전통 제철 과정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옛날에는 쇠를 가공해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에 힘썼고, 병기를 만들어 국방을 튼튼히 했다고 한다. 초여름날씨임에도 ‘쇠부리축제’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제15회 쇠부리축제’를 맞이해 북구 문화를 열심히 홍보 중인 이명숙 북구문화원 부원장을 만났다.  


Q. 오늘로 ‘쇠부리축제’가 3일째(마지막날)다. 쇠부리축제는 어떤 축제인가?

불매꾼들의 혼이 담긴 노동요 ‘울산 쇠부리 소리’는 근대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1980년대 초 마지막 불매대장과 편수들의 경험과 구술을 토대로 민속놀이 ‘울산 쇠부리 소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울산 쇠부리 소리는 ‘불매소리’, ‘금줄소리’, ‘애기 어루는 소리, ’성냥간(대장간) 소리‘로 구성된다. 울산 쇠부리 소리의 기원은 조선의 철강왕 구충당 이의립 선생이 한평생 철산지를 찾으려 전국을 돌아다니다 천신만고 끝에 울산 북구 달천산에서 토철을 재발견하고 무쇠 제조법을 발명한 데서 유래한다. 이의립 선생은 양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부국강병의 길로 인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철을 생산하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다. 이런 힘든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노동요가 불렸다. 이를 ‘울산 쇠부리 소리’ 또는 ‘불매소리’라 한다. 울산 쇠부리 소리가 지역 전통문화로 자리 잡고 체계적으로 유지, 전승,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지정이 필요한데, 현재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울산 쇠부리 소리는 울산시 북구 달천동에 있는 달천철장의 역사적 희귀성과 쇠부리터(지금의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는 일련의 행위를 바탕으로 쇠부리 놀이로 만들어 공연되다가 매년 5월경 북구청 일대에서 펼쳐지는 쇠부리축제의 핵심 주제물로 공연되고 있다. 쇠부리축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쇠부리’를 지키고 이어가고자 지난 2005년을 시작으로 올해 15회째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2017년 울산달래쇠부리놀이보존회에서 울산쇠부리소리보존회로 명칭을 바꾸고 쇠부리 소리를 중점적으로 연습해 오고 있다.

Q. 쇠부리축제를 통해 북구 문화와 민속놀이체험을 홍보하고 있는데 소감은?

울산 북구에는 기박산성 의병추모제, 박상진 의사 추모제 등 큰 행사가 있는데 쇠부리축제도 그중 하나다. 쇠부리축제를 맞이해 봉사단원들과 함께 울산 북구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다. 북구 문화 홍보와 함께 활쏘기, 제기차기 등 사람들이 전통 민속놀이도 체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무료로 하다 보니 밤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기도 한다. 특히, 제기차기는 아버지들이 옛날 동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많이 즐긴다. 다만, 장소 제한 때문에 굴렁쇠 굴리기, 윷놀이 같은 놀이는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북구문화원 책자도 배포하는데, 특히 어르신들이 쇠부리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오전 시간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 우리 봉사단원들 모두 북구 문화를 홍보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화합하는 모습에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Q. 울산 북구문화원에서 부원장을 맡고 있다. 북구문화원에서는 어떤 사업들을 하는지?

울산 북구문화원에서는 지역고유문화 계발·보급·보존·전승 및 선양과 향토사 조사·연구, 사료 수집과 보존, 지역문화 발굴 사업을 하고 있다. 또 지역문화행사를 열고, 지역문화의 국내외 교류 및 지역문화에 관한 사회교육활동도 펼치고 있다. 울산북구문화원에는 △박상진 의사 선양사업 △기박산성의병 선양사업 △향토문화연구사업 △쇠부리보존회 풍물경연대회 △북구문화원지 발간 △청소년 충·효 백일장 △쇠부리놀이 보존과 전승사업 △청소년 전통문화 전승캠프 등의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Q. 역사적으로 울산 북구는 어떤 곳인지 설명한다면?

삼한시대 지금의 울산 북구는 야철 생산의 심장부였다. 다시 말해 지금으로치면 금속산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유명했다. ‘자동차의 메카’로 통하는 지금의 북구 모습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후 야철장이 자취를 감췄고, 울산이 급격히 산업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 주민들은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는 ‘반농반어’에 종사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이 번창하고, 지방산업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울산 북구는 다시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체 주민의 70% 안팎이 자동차산업이나 연관기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만큼, 울산 북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자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그림처럼 펼쳐진 동해의 해변과 기암절벽이 있고, 곳곳에 선조들의 얼이 서린 문화재가 산재해 해양관광도시의 면모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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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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