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산행을 포기하지 마세요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19-07-03 09: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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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숲속 물길 따라 걸어가는 재약산 주암골

하지감자가 포슬포슬 맛난 여름이 왔다. 여름이면 도심에서는 에어컨, 냉장고의 시원한 물을 떠올리겠지만 산에서는 우거진 초록의 숲과 계곡을 떠올리게 된다.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일행과 함께 주암골을 만끽하러 주암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 계곡에 탁족하며 쉬어가기


동남아 4개국을 4개월 동안 다녀와 한국에 온 지 10일 남짓 된 박진영 님과 함께 산으로 올랐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영남알프스 학교에서였다. 우리는 귀농귀촌교실의 수강생으로 만났다. 산을 좋아했고, 농촌의 삶을 동경했으며,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도시민이라는 공통점으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퇴사 후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까무잡잡해져 있었고 그 짙어진 피부색만큼 내면의 깊이도 깊어진 듯했다. 

 

▲ 그늘진 숲길

 

▲ 길 위의 이정표


울산에서 울밀로를 타고 상북으로 향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도에서 탁 트인 산을 볼 수 있었는데, KTX역 앞에 생긴 고층아파트와 송대리의 아파트 단지가 경치를 해치는 일을 함께 아쉬웠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집이 필요하겠지만, 경관 보호도 고려했으면 좋겠다. 울산을 대표하는 산군들이 모인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이라도 지켜졌으면 했다. 

 

▲ 길을 걷다보면 계속 만나는 계곡

 

▲ 보슬보슬 귀여운 노루오줌꽃
▲ 오솔길 옆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주암마을로 향한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도심의 빽빽한 건물을 지나, 농산촌의 고즈넉한 집과 논들을 지나면 초록 나무숲이 성성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암골은 과거 빨치산의 진지가 될 정도로 첩첩산중의 깊은 골이다. 우거진 숲의 그늘과 길 따라 흐르는 시원한 계곡 덕에 여름산행으로는 적격인 길이다. 


3월쯤 지나가며 보았던 산의 모습을 떠올리니 초록의 생명력이 놀랍다. 갈색의 나뭇가지가 그득했던 산이 불과 3개월 만에 초록으로 우거졌다. 식물을 키워본 이는 누구나 알 것이다. 작은 점 같은 씨앗이 놀라운 먹거리로 변해 있기도 하고, 별로 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볕과 물, 땅의 양분만으로 쑥쑥 자라난다. 심지어 챙기지도 않은 잡초라 불리는 풀들은 얼마나 빨리 자라나고 퍼지는지 모른다. 

 

▲ 우리 조상들이 고급연료를 만들던 옛 숯가마터

녹색은 유일하게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꾼다. 산업들 중에 유일하게 농업과 임업만이 맑은 공기와 물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것들을 만들어준다. 초록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물소리가 시원하다. 30분쯤 올랐을까, 물소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주먹밥과 참외와 살구를 먹으며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점심시간 전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는 고등학생이 된 느낌이다. 그녀는 여행 중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허나 일상도 매일 다른 일이 일어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도 그 사람이 매일 조금씩 변하니 일상을 사는 것과 여행이 동일하지 않겠냐고 했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차가운 계곡물과 시원한 나무 그늘 덕에 외투를 입어도 추위가 느껴진다. 짐을 싸서 다시 걸음을 시작한다.


그녀가 “산에 간다고 하면, 오르면 내려올 산에 왜 가냐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그 말에 뜨악했다. 산행은 정상에 다녀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산행은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생도 비슷하다. 태어나고 죽는데 우리 삶의 목적이 있지 않다. 산길을 빨리 걷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물길이나 동물들이 낸 길을 따라 걷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걸어가야 방향을 정확히 잡을 수 있다. 여행, 산행은 이래저래 삶과 비슷하다. 

 

▲ 운무가 그득한 재약산 정상석
▲ 정상에서 마시는 원두커피
▲ 운무가 그득한 재약산 정상에서(왼쪽부터 박진영, 노진경)


걷다 보니 재약산 정상에 다다랐다. 산하는 쨍쨍했는데, 산정에는 구름이 걸려 운무가 그득하다. 보온병에 준비해 온 뜨거운 물로 원두커피를 내린다. 산정에서 무겁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조금 노력을 들이면 소소한 감동을 만나게 된다.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큰 행복을 선사할 때가 있다. 커피향에 사람들이 모인다. 지나가는 아저씨 산객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잔 받아 가면 되냐고 너스레를 떠신다. 필자는 흔쾌히 “네, 물론이죠”라고 대답한다. 흔쾌한 대답에 의아해한다. 

 

▲ 주암삼거리에 있는 매점(평일이라 문을 닫았다.)
▲ 천왕정사


원래 맛난 건 나눠 먹어야 더 행복하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들과도 나눠 마신다. 커피를 다 마신 산객들이 동생이 제주에서 보내준 오메기떡과 초코바, 소세지등을 가방에서 꺼내 주고 간다. 고맙게도 풍성한 간식이 준비됐다. 이렇게 조금만 서로 나누고 더불어 살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삶과 비슷하다며 우리는 웃었다. 

 

▲ 초록숲을 따라 걸어가는 길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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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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