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봄꽃이 만발한 가지산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19-05-29 09: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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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여름과 봄의 경계가 물에 번진 수채화 같은 어느 날 일행과 함께 가지산으로 갔다. 어디든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사색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물가에 앉아 도란도란 낮술 먹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그런 날이었다. 걷기에는 조금 힘든 날이었지만 굳이 산으로 들었다.

 

▲ 중봉에서 바라본 가지산 정상

가지산하면 추위와 바람, 높고 험준한 봉우리, 쌀바위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겠지만 봄날의 철쭉도 만만찮게 멋지다. 중봉 아래 철쭉군락지가 장엄하게 펼쳐지는 시기가 바로 이때쯤이다. 5월이 되면 분홍꽃이 여기저기 만발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500년 철쭉나무가 가지산에 있다. 그 절경을 보기 위해 일행과 함께 나섰다.

 

▲ 가지산 철쭉

 

▲ 만발한 진달래

석남터널을 시작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함께하는 일행 중 한 명이 고무신을 신고 왔다. 다른 이들이 걱정했지만 충분하다고 답했다. 그는 “옛날 어르신들은 짚신 신고도 잘 걸어가셨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나무지팡이를 하나 구해 아무 문제 없이 잘 걸어갔다. 항상 산행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싶어 이것저것 사기를 좋아했던 과거가 겸연쩍었다.

 

▲ 석남터널 초입에서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른다. 숨소리가 가빠질 무렵,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며 앉아 쉬기 좋은 바위가 나온다. 내려다보면 석남터널 상가들이 보인다. 얼마 올라오지 않은 것 같은데도 아래가 가맣다. 고된 나날을 보내는 중엔 지난한 날들이 끝나나 싶지만, 다 지나고 뒤돌아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네 삶 같다.


마음의 여유를 챙긴다. 정상에 목적을 두고 빨리 걷지 않는다. 찰나의 과정들이 모두 목적인 양 순간에 충실한다. 초입에서는 철쭉이 지고 있었는데 오르다 보니 철쭉이 만개해있었다. 허나 첫 간이매점쯤에 다다르니 철쭉의 봉우리가 아직이다. 중봉쯤에 다다르니 철쭉은 온데간데없고 진달래가 만발이다.

 

▲ 초입 나무계단 길의 신록과 철쭉

초여름에서 봄으로 시간을 건너온 것 같았다. 나무의 생명력은 참으로 신비롭다. 겨울의 나뭇가지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꽃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뭇가지 안을 잘라 봐도 꽃봉오리는 없다. 나무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 볕과 물과 양분으로 꽃을 피워낸다. 꽃이 피고 지면 흐드러진 초록을 뽐낸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서서 경이로움을 선물해주는 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 첫 조망바위


간이매점을 지나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500년 된 철쭉나무가 있는 드넓은 철쭉군락지가 나온다. 불꽃을 내뿜듯 뻗은 가지가 장엄하다. 이 경이로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허나 금세 철쭉의 유명세가 그들을 힘들게 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상충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자연의 유명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훼손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이 멋진 나무의 정확한 이정표가 없어 모두와 나누기 힘든 것이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석남고개

중봉으로 오르는 가팔진 돌길에 마음의 여유를 잃는다. 몸이 힘들어지니 과정보다 목적을 생각하게 된다. 정상에 가면 보게 될 절경에 마음을 둔다. 미래는 예측한 대로 오지 않는데도 말이다. 미래로 달려가는 마음을 붙잡아 현재로 데려온다. 중봉에 앉아 돌아온 길과 걸어갈 길을 가늠해본다. 산벚나무가 신록 속에 여기저기 퐁퐁 피어나있다. 중봉부터 산정까지 진달래가 만발이다. 신록의 싱그러움과 봄날의 꽃잔치를 보며 중봉에 앉아 여유를 찾는다.

 

▲ 중봉에서 여유로운 쉼

 

▲ 고무신과 나무지팡이만으로도 충분하다던 일행


중봉에 앉아 산하를 내려다본다. 밀양, 경주, 울산이 보인다. 집들이 하나의 점 같다. 저 집을 구하기 위해 도시에서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는지 일행과 얘기를 나눴다. 이 산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미미한가.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는 한낱 먼지 같은 존재다. 무상하다.

 

▲ 산하의 고헌산과 이이벌

 

▲ 가지산 정상


허나 우리 속에는 그 거대한 우주가 있다. 영겁의 시간에서 찰나일 뿐, 거대한 우주 속에 한낱 점일 뿐이지만 그 찰나와 그 점이 모여야 시간과 우주가 된다. 아등바등하지 말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자고 다짐해본다.

 

▲ 가지산 정상에서 본 가지산갤러리와 진달래군락지


가지산 정상에 다다른다. 진달래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가지산갤러리 주인은 평일이라 그런지 자리를 비웠다. 정상석의 작은 그늘 앞에 앉아 자연의 품속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아래로 보이는 도시가 문득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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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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