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속 개인의 기억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19-07-10 0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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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1970~90년대 울산지역 여성노동자에 대한 기억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1970년대~1990년대 울산의 여러 산업 현장에서 일했던 여공, 여성노동자들을 찾습니다. 오늘날의 울산을 대표하는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있기 전, 울산의 경공업 산업현장에 있었던 여공들을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 그들은 왜 여공이 되었을까, 어떤 일을 했을까, 울산에서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니기 시작한 여공들이 대부분이겠죠? 그리고 석유화학단지, 자동차 공장, 조선소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또는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남성노동자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요? 


울산의 대표적 이미지인 중화학 공업단지, 남성노동자의 도시에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공’을 떠올렸을 때 쉽게 떠오르는 ‘희생하는 딸’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보려는 질문입니다. 대학원의 울산현대경제사 수업 시간에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자료를 조사해보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의 질문이 저의 문제의식, 주제였지요. 관련된 선행연구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존재했으나,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울산에 대규모의 석유화학공장, 자동차공장과 조선소가 생기기 이전에 태화방직, 고려합섬, 동양나일론, 태광산업과 같은 경공업 사업장이 먼저 들어섰습니다. 방직공장과 화섬공장, 목공품 공장 등에는 상당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중학교를 다니는 1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으로,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광역시로 승격되기 이전의 기록이라 울산을 특정지은 통계자료를 찾기 어려운 데다가 여성노동자에 대한 기록은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못한 기억은 기록되지 않는 것이죠. 공식적인 기록, 사료가 절대적으로 적은 여성사에서 기억을 회상해 기록한 구술 자료는 중요한 단서, 사료가 됩니다. 


그런데 구술을 통한 이 기록은 흥미로운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울산지역의 산업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성들은 거의 일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마산의 1971년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경공업 사업장 노동자의 78.2%가 여성이었습니다. 울산지역 경공업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기억은 ‘중화학 공업도시 울산’이라는 담론 속에서 선별적으로 삭제된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산업현장에서의 경험에 대해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노동’, ‘남성노동자와 똑같은 노동을 했다’고 구술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비율의 구술자들은 ‘회사에는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료직원들과 친하게 지내서 즐거웠다’ 등 구체적인 산업현장의 경험이 아닌 주변의 평판,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술합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여성노동자들은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현장에서도 전문성이나 실력이 아닌 성격이나 태도로 평가됩니다. 


노동자가 된 동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애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먼저 공장노동자가 된 선배들을 통해 내가 번 돈으로 살 수 있는 도시생활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되지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지만 야간에는 학교를 다니고, 월급으로 자신을 꾸미기도 하며 동료들과 여가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험을 애처로운 ‘희생양 담론’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기억은 사회의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담론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되어 개인의 기억을 깎고, 덧붙이며 조각합니다. 내 기억은 진짜 나의 경험과 나의 생각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시대와 공간이 공유하고 있던 담론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매초 매분 과거가 되고 있는 지금의 나의 기억과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암묵적 합의, 하지만 내가 동의한 적 없는 담론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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