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명물이 될 지도 몰라

김연숙 시민(울산미래공생연구소) / 기사승인 : 2019-11-21 09: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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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옆 작은 골목길

장춘로 마을인생학교

한 벽면을 채우고도 도로까지 점유한 걸개그림의 압도적인 힘 앞에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다. 2년 전 작업했던 대형 그림 걸기 작업을 마친 아이들은 새삼스러운 듯 발걸음을 멈춘 채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던 아이 하나가 말한다. “내가 그린 데가 이곳이었던가? 그런데 이걸 보관하고 계셨다는 게 더 대단해요.” 그렇게 소환되는 기억은 무뚝뚝한 심장도 무장해제하는 힘이 있다. 원도심이 품은 힘도 그럴 것이다. 가던 걸음 멈추게 하고, 어딘가 품고 있는 누군가의 기억을 소환하는.

 

 

나는 지금 오픈식의 분주함을 견뎌낸 발길 뜸한 갤러리 ‘하진’에서 이 글을 쓴다. 중앙동 도시재생 실천프로젝트 ‘장춘로 마을인생학교’의 마지막 행사인 발표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이다. 장춘로에는 갤러리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굳이 모두가 스쳐가 버려서 존재감도 미미했던 이곳을 전시회 장소로 정했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스쳐가는 공간에 불과하겠지만, 이제부터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삶의 한 조각’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춘로에 가장 늦게 들어서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답게 거리를 지키고 있는 꽃집 ‘메리스프링’의 화분으로 아름다운 장춘로 마을인생학교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장춘로 마을인생학교의 주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거리의 풍경을 바꾼다’이다. 우리는 끓임 없이 질문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울산미래공생연구소는 출발 때부터 집요하게 아름다움에 천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소한 일상의 위대함’에 주목했다. 거기에서 장춘로 마을인생학교는 시작했다.
 



도심형 도시재생

도시재생이면서 ‘공동체 활성화’가 구청 공모사업에 명시된 사업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중앙동의 지리적 개념이 없었다. 지리적 개념에 대한 몰이해는 공간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다, 공간이 소거된 자리에는 사람이 들어올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중앙동은 소거되고, 사무실이 있는 장춘로가 들어왔다. 1년 전 사무실 계약을 앞두고 열띠게 토론했던 장면도 소환됐다. 낡고 허물어질 듯한 건물, 어둡고 칙칙한 외관, 곰팡내 진동하던 실내, 아직 재래식 화장실의 형태를 지닌 화장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모퉁이’와 ‘골목’이었다. ‘모퉁이를 돌면 뭔가 따듯한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우리를 장춘로 사람이 되게 이끌었다. 


다시 도시재생과 공동체 이야기.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자리에 우리는 사회적 상상력을 끌어왔다. ‘원도심’과 ‘원주민’ 그리고 마침 그때 들어온 것이 주차하다 마주한 무료급식소의 묘한 풍경이었다. 일반적인 ‘무료급식소’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그러나 비슷한 그 풍경.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새롭게 해석할 ‘외부인의 시선’을 소환했다. 그렇게 우리의 ‘장춘로 마을인생학교’의 바탕은 완성됐다. ‘원도심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과 공간을 잇고, 외부인의 시선으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는, 그리고 그곳을 살고 즐기는 사람들을 묶어 보는, 도심형 도시재생.
 


1인1책방, 책정거장, 책축제

먼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자 ‘우리는 뭐 하러 이곳에 오는가’란 질문이 따라왔다. 우리는 책 읽으러 장춘로에 온다. 매주. 그럼 책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즐기는 책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인1책방’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책을 매개로 일상적 만남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번 쯤 조용히 책을 두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보는 경험은 소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연을 나누는 ‘책정거장’이 들어왔다. 기획 의도에는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실제 진행은 더뎠다. 머리와 몸이 함께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일 수도 있고, 기획·운영자의 게으름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기획은 이 도시재생사업과 상관없이 울산미래공생연구소에서 지속 진행 사업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공간. 우리에게는 우리가 상상해야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장춘로와 골목길이 소환되고, 장춘로에 소재한 ‘책’을 매개로한 공간들이 소환됐다. 그리고 일상적 활동으로 깊고 오래 보기 위해 ‘걷기’와 ‘그리기’와 ‘쓰기’가 소환됐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누구를 만나야할 것인지도 문제고, 어떻게 만날 것인지도 문제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그리고 직접 경험하며 만나기’를 선택했다. 동호회 형식은 그렇게 소환됐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장춘로를 그리고(드로잉), 엄마와 아이들이 만들며 아름다움을 상상하고(바느질), 공동으로 장춘로의 이미지를 상상하고(뜨개질), 그들이 함께 장춘로를 배워 알기(원데이 클래스)로 진행됐다. 결론 지점에서 하나로 통일될 수 있도록 촘촘하게 기획했고, 꼼꼼하게 대상을 특정했다. 특정당한 대상들은 열심히 참여했고, 결과는 주변 상인과 오래 된 원주민, 장춘로의 예술가, 매일 아이들과 장춘로 길을 걸어 학교로 가는 엄마들이 함께 하는 ‘작은 장춘로의 소통 단위’가 형성됐다. 그 흩어짐을 모아낸 것이 모든 이들이 함께 해서 비로소 가능했던 책축제와 활동발표회 격인 전시 ‘장춘로 그리고 쓰다’전이다.
 

모퉁이 옆 작은 골목 예술장터

다시 걸개그림이 걸리던 지난 일요일 오후로 돌아가 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재미있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느 참가자의 말이 증명하는 한글날 열린 1회 책축제의 열기에 이은 2회 책축제의 주제는 ‘모퉁이 옆 작은 골목 예술장터’로 정했다. 1회 책축제 때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의 풍경을 기억했고, 한산하던 골목길을 꽉 채우던 체험 인파를 생각하면서, 골목길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장터와 함께 가을밤을 상상하며 참여자 모두가 한편의 시를 낭독하기로 했다. 전문 낭송인들이 중간 중간 초대돼 낭송의 맛을 더하기는 했지만, 중심은 장춘로를 찾는 사람들이 삶의 순간순간들에 시 한편 정도 읽을 여유를, 시가 주는 울림을 경험하고 나누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거 매월 한 번씩은 하자’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시의 힘은, 함께 하는 놀이의 힘은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어떤 형태로든 부활돼야할,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공동체 놀이마당’이다.


1회 책축제 때 예산이 투입됐던 골목길 무료 체험의 자리에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교환하는 방석이 깔리고, 아이들이 뛰어 놀고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고, 손수 재배한 농산물 장이 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획하되 기획이 드러나지 않도록 진행되게... 걸개그림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장터에 물건들이 깔리자, 옆집 가게 머리 하얀 할머니가 흥분한 표정과 달뜬 목소리로 “장 된다. 우리 장 하자. 장 해라. 매주 해라, 우리 가게 의자도 빌려줄게. 여기 이것도 써도 된다. 장 하면 내가 골목길 꽃도 열심히 가꿀게. 한 달에 한 번은 너무 적다. 매주 하자.” 그렇게 즉석에서 골목장터는 ‘수요장터’로 명명됐다. 장터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버스킹 공연을 하러 찾아왔다. 서툴지만 힘찬 북소리.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북소리.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다. 멈춰서는 발길은 얼마나 위대한가. 앞으로 이 모퉁이 옆 작은 골목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런 모퉁이 시장에 대한 상상은 사실 대학생 여행자가 원데이 클래스 ‘젊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세계의 골목길’에서 들려준 이야기에서 촉발됐다.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골목길은 ‘그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공간’이라고 청년 강사는 강조했다. 그것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할 것인가가 앞으로 모퉁이 골목길의 과제다.
 



갤러리 ‘하진’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전시가 열린다. 갤러리 ‘하진’이라고 했을 때, ‘아, 그곳’이라고 알아채는 이는 단연코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거리를 그냥 스쳐간다. ‘우리 사무실 바로 옆이에요’해도 모르고, 바로 옆집 꽃집도 배달할 곳의 위치를 모른다. 장춘로 마을인생학교는 이런 장춘로의 공간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장춘로에는 꽃집이 있고, 케이크를 만들고 과자를 굽는 아름다운 가게가 있고, 핫한 양사커피집이 있고, 책 읽는 공간이 있고, 작은 도서관이 있고, 고집스런 주인아저씨의 드립 커피가 맛있는 커피집이 있고,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민들의 쉼터인 국밥집이 있고, 가마가 있는 공방이 있다. 그리고 장춘로에는 갤러리도 있다. 지금 그 갤러리 ‘하진’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 이곳에 오면, 그림 그리는 날마다 내리던 비로 사람들이 겹칠 수밖에 없었던 동선과 다른 시선을 확인할 수 있고,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울산미래공생연구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고, 좋은 선생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춘로 사람들이 지난여름 상상해 얻은 장춘로의 이미지 혹은 과제 ‘잇다’도 보고 느낄 수 있다. 

 

 

연 인원 수백 명의 사람이 참여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 ‘잇다’와 공간 ‘모퉁이 옆 작은골목길’. 그 이야기는 이제 시작점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정도랄까. 출발하기 위해서 겨울 잠 자며 이어야 할 마지막 하나의 바늘 코는 아직도 대문을 빼죽 열고 무슨 일인고 빼꼼 얼굴만 내비치고 있는 원주민들이 대문을 활짝 열고 출발선에 함께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안과 밖에서 동시에 문이 열려야하는데. 줄탁동시. 줄은 하는데, 동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게 어쩌면 명물이 될 지도 몰라! ‘모퉁이 옆 작은 골목길’.


김연숙 시민기자(울산미래공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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