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의 조건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0-01-15 09: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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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 겨울을 틈타 새 작업장 짓기

 

귀농인들이 초기에 겪는 어려움은 다양합니다. 이주로 인한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들이 많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농사기술과 생산력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비롯되는 난관에 자주 부딪히게 됩니다. 작물의 특성에 따른 재배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도가 높더라도 적절한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히 경험 부족 탓으로 돌리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왜냐하면, 농사는 대개 한 해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같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어 시행착오를 교정하는 데에 너무 긴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시밭길을 몇 해 걷는 와중에 타성에 젖지만 않는다면, 귀농인들은 지속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지를 발동합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은 장기간 대규모 약탈식 농사로 인한 농업생태계의 파괴를 경고하는 용어입니다. 제 몫의 농사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판에 농민이 환경보존의 임무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짐 지우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는 명제는 농업 체제 전반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뿐만 아니라 개별 농가의 선순환 영농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구축하자는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농업생태계와 자연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농생태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인 스티븐 글리스만(Stephen R. Gliessman)은 농생태학은 ‘생태학적 개념과 원리를 식량 생산 체계의 설계와 관리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 살아남은 푸성귀들


그리스만은 그의 저서 <농생태학: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의 생태학(Agroecology: The ecology of sustainable food systems)>에서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 생산 체계’를 탐구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학 농자재와 대형 기계를 활용하는 대규모 단작 농업을 ‘산업형 농업’으로 규정하면서 이런 방식의 농업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산업형 농업이 지배하는 체계에 내재된 모순들은 그 체계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이론적 분석과 대안 모색, 그리고 실천적 과제 등을 토대로 개별 농가의 지속 가능한 농사의 조건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는 많은 농민이 오늘날 우리가 ‘대안적인 농업’이라 부르는 것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대안적인 농법의 채택은 농민들이 산업적, 관행적 농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농업생태계를 관리하도록 장려하는 여러 요인과 함께 차츰 가속화됐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일반화돼 있는 농업 또는 농법은 에너지 비용이 극적으로 상승해 계속 오르고 있고, 산업적 또는 관행적 농법으로 생산된 작물은 이익률이 낮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새로운 생태적 농법을 발견하고, 나아가 개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자, 생산자, 규제 당국 사이에 환경에 대한 인식과 먹을거리 품질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재배되고 가공된 농산물에 대한 새롭고 강력한 시장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로 인해 ‘농민들은 생태학에 기반한 방식의 채택을 위한 문화적 지원이 증가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정치 판도를 가로질러 소비자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대안 농업의 기초가 되는 보존, 자급, 자치, 책임의 가치를 지원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서 농민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합니다. 지속 가능한 생태적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더욱 많은 농민이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농민들의 적극적인 의지는 투입재와 관리 등의 비용과 다른 시장 체계 및 가격으로 조정하는 농민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 다행히 녹아준 상수원


우리나라 농민들, 특히 귀농인이나 소농, 도시농업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친환경 농법운동에 비춰 글리스만이 인식하는 상황변화는 공허하지 않습니다. 다만,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타 분야에 대해 배타적인 독립성을 가지지 못할뿐더러 능동적인 역할마저 매우 제한되는 실정이어서 변화는 속도가 느리고 정체될 우려마저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현장의 농법과 농장 운영의 일상적 관리, 계획, 판매전략, 철학’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재배방식의 원리와 여러 가지 지침들을 제시합니다.


그는 흘려버리는 양분 관리 방식 대신 생물학적 질소 고정과 균근 관계 같은 자연 과정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양분 순환 모델로 전환할 것을 권합니다. 재생할 수 없는 에너지원 대신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 환경이나 농민, 농업노동자 또는 소비자의 건강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는 재생할 수 없는 농장 외부의 인적 투입재의 사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질을 체계에 추가해야 할 경우, 합성해서 제조된 투입재 대신 자연에서 발생하는, 천연재를 사용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해충과 질병, 잡초를 ‘방제하는’ 대신 관리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생물학적 관계를 감소시키고 단순화시키는 대신 농장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관계를 다시 확립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농장 경관의 작부 패턴과 생산 잠재력 및 물리적 제약을 더 적절히 맞춰줘야만 하다는 원칙도 제시합니다. 재배과정에서 농장을 변형시키기보다는 농작물과 동물 종의 생물학적, 유전적 잠재력을 농장의 생태적 조건에 적응시키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농업생태계 전반의 건강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말입니다. 토양, 물, 에너지, 생물 자원의 보전을 우선해야 하고, 전반적인 농업생태계의 설계와 관리는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밑받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먹을거리 체계의 변환을 위한 단계를 언급합니다. 1. 산업적 관행의 효율성 증대, 2. 대안적 농법과 투입재의 대체, 3. 전체 농업생태계의 재설계, 4.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 재확립과 개발, 5. 세계 먹을거리 체계가 모든 사람에게 지속 가능하고 공평하도록 재구축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나는 그가 제시하는 1단계가 무척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전복적인 농사방식 전환은 실패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효율성 증대는 농업을 바꾸지 않은 채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적정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일부 화학자재를 천연재로 대체한다면 효율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많은 농가가 천연 황을 농약으로 도입함으로써 농약 비용을 대폭 줄이고 있는 사례가 이를 입증합니다. 2단계는 1단계의 자연스러운 이행이 될 것입니다. 3단계는 병충해와 영양공급에 걸치는 매우 복합적인 사안이어서 실천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우선은 사이짓기와 섞어짓기, 콩과 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돌려짓기 등 쉬운 작업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4단계는 농가의 수익과 직결되는 것으로 전업 농민이 직접 소비자와 연결을 재확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5단계는 너무 거시적인 전망에 속하는 것이어서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볼이 빨개지도록 가지치기


4단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 재확립과 개발’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의 ‘연결’은 대체로 간접적입니다.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는 유통망이 따로 존재하며 대다수 농산물은 경매체제에 편입돼 있습니다. 직접 납품이나 생산단체가 주축이 되는 기업형 직거래 등이 있다 해도 농산물 경매법인은 농산물 시세 결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개별 농가의 직거래가 소비자와의 관계를 재확립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유통 채널로서 역할이 너무 미미하고 일반적인 소비자 욕구를 충분히 충족할 수 없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어 확장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귀농인 또는 소농, 또는 친환경 농법을 핵심 가치로 삼는 농가의 안정적 직거래 출하를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점에 중재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중재자는 특정한 위상을 가진 특별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고무하는 역할을 맡게 될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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