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11-28 09: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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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난 토요일, 헤이트스피치(혐오표현)에 관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오사카 재일동포 언니들, 그 4년간의 기록’이라는 설명의 “더 한복판으로(The Hanbok on the Court)” 다큐멘터리였다. 영화는 재일동포 2.5세 이신혜 님의 재특회 대표 사쿠라이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 사용에 대한 개인손해배상청구소송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단체의 혐한시위는 “조선인은 바퀴벌레, 착한 조선인이든 나쁜 조선인이든 모두 죽여라”와 같이 과격한 혐오표현과 선동이 난무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혐한시위의 대상 중 여성은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가중된 “복합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영화의 중간쯤에는 서울 퀴어 페스티벌에 등장한 한국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반(反)동성애 시위 장면이 나오는데, 어김없이 “박멸, 퇴치”와 같은 과격한 구호가 등장한다. 또한 수요 시위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환영”하고 “우리 조선의 여자가 당하였듯 일본의 여자들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고 싶다”는 맥락을 알 수 없는 발언을 쏟아낸다. 일본과 한국의 극우 세력들은 그 대상을 달리할 뿐, 대상을 보잘것없는 벌레 등에 비유하며 비난하고 혐오하며 나아가 존재를 부정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단지 언어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선동의 장치, 정치적 실천의 근거가 됨을 역사적으로 목도한 바 있으니,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하나의 유희처럼 사용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꼰대”됨을 감수하고 “지적질”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페미니스트 교사의 숙명일까. 학급문고에 몰래 꽂아 둔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는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에 대한 책이다. ‘급식충, 한남충, 유족충’처럼 사람을 벌레에 빗댄 말들, 노인을 ‘틀딱’이라고 지칭하거나 특정 직업을 낮춰 부르는 ‘짭새’, ‘조무사’, ‘밥하는 아줌마’와 같은 말에는 차별과 멸시가 담겨 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림”으로 보는 ‘결손가정’, ‘벙어리장갑’, ‘미혼’과 같은 단어들, ‘남자는 힘이 세야 해’, ‘여자는 이뻐야 해’, ‘김여사’, ‘여류작가, 현모양처, 미망인, 처녀작’ 등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담긴 언어에 대한 쉬운 설명은 그 자체로 인권감수성, 성인지감수성을 키우기에 유용한 교재가 된다.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재특회의 혐한시위에 대항해 “우린 차별에 반대한다”, “인종차별을 하지 마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카운터들의 활동이 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언어를 바꾸는 일, 즉 일상의 카운터가 되는 과정은 비록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냐”라는 핀잔을 수없이 듣게 될지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는 사고를 담을 뿐 아니라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언어투쟁”은 불가피하다.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우리는 현재 필요하다면 기의에 상관없이 어떤 기표든 가져다 쓰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아니한가. 군부독재를 추앙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잔당들이 “애국시민항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꼴을 보자니 대항언어를 만들어 내는 일뿐 아니라 언어를 지켜내는 일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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