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에 관한 괜한 생각

박기눙 소설가 / 기사승인 : 2019-03-13 09: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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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성경을 읽는 중이다. 어릴 때 교회를 다닌 경험이 생각나서 읽은 것은 아니다. 순전히 문학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소설을 처음 배울 때 글쓰기 선생은 성경 읽기를 권했다. 굳이 종교적인 까닭이 아니어도 한 번쯤 통독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 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선생이 느끼는 성경의 무게와 무신론자에 가까운 내가 지니는 성경의 가중치가 달라서 처음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연로하신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을 추억하다가 문득 성경을 읽어보라는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선물 받은 성경을 펼쳤는데 글씨가 잘아 눈에 들어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교회를 다니는 이에게 큰 글 성경을 얻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제법 두툼한 책을 시나브로 읽으려 마음먹고 책을 펼쳤다. 익히 듣던 천지창조의 과정은 사실 몇 장에 지나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 이삭, 아브라함, 다윗, 모세, 솔로몬 따위의 등장인물도 많고 서사도 대단하고 사건과 배경도 방대했다. 시험을 치른다면 분명 낙제점을 맞을 만큼 눈여겨볼 것도 기억해야 할 순서도 많았다. 창조주의 말과 선지자의 예언은 복잡하고 장황했다. 순전히 문학적인 관점으로 읽지 않았다면 분명히 끝까지 읽지 못했으리라.


책 아랫부분에는 낱말 풀이와 시대적 배경, 해설을 깨알같이 적어 놓았다. 그런데도 멀고 먼 지역과 역사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아득해질 때가 제법 많았다. 사전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꽤 많다. 많이 들어본 글귀가 눈에 띄면 신기하기도 하고 똑같은 글귀가 여러 곳이고 ‘없음’으로 나타낸 구절이 열세 곳이라니 신기하기도 했다. 서양의 고전과 철학서에 고스란히 스민 기독교 사상의 뿌리를 맛본 듯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지금은 소위 구약이라는 부분을 다 읽고 신약을 읽는 중이다. 구약과 비교하면 신약은 예수의 생애와 제자들의 부연 설명, 설교 같은 강론, 편지가 많은 편이다. 신약은 마태, 마가, 누가가 차례로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간증하듯 기록한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연거푸 세 번 똑같이 제자들은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공관의 뜻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앙의 절차는 대부분 반복 주입이지 않은가. 종교적인 면이 고스란히 보여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하긴 수천 년을 이어온 서양사상의 뿌리가 만만할 리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왜 기독교 경전은 성경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불교의 경전은 불경, 이슬람의 경전은 코란.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聖經). 종교 중에 성(聖)을 쓰는 것은 기독교가 유일하지 싶다. 성경, 성부, 성신, 성령, 성녀, 성직자 따위의 글자는 기독교의 전유물처럼 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성이라는 글자를 기독교에 헌납한 꼴이다. 물론 특정 종교에서만 통용되는 글자가 많지만 가장 대중적인 종교에 뺏긴(?) 성(聖)이라는 글자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체 언제부터 성(聖)은 기독교에서 통용되었을까.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만 유독 성(聖)이라는 글자를 많이 쓸지도 모른다. 성스럽다는 한자의 뜻은 다른 이와 구별하고 권역을 나누고 싶은 권력은 아닐는지. 유일신을 내세우는 기독교의 속성이 깃든 말처럼 보인다. 평상시에 쓰지 않는 뜻이 크고 깊은 낱말, 예를 들어 뛰어넘는 다는 뜻의 초(超)같은 낱말은 아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성(聖)도 마찬가지. 그런 한자를 쓰는 까닭은 분명 평등과는 멀어 보인다. 성(聖)이라는 글자를 많이 쓰는 종교, 기독교가 내겐 왠지 크고 높은 울타리,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인다. 그들의 경전은 뒤로 갈수록 어떤 강요와 집요한 설득으로 가득하다. 유대인을 택한 이후 이방인까지 아우르며 세를 넓힌다. 요한계시록에는 어떤 예언이 가득한지 얼른 끝까지 읽어야겠다.


물론 기독교 경전은 대단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학적인 관점으로 읽은 내게 신성하거나 거룩하지는 않다. 순전히 내 관점에서 이 굵고 두꺼운 책을 무엇으로 부를 것인가는 오롯이 내 몫이다. 아, 역시 제목을 짓는 일이 제일 어려워!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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