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

김루 시인 / 기사승인 : 2020-08-19 09: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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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세상

예술이란 무엇일까, 상식을 넘어서고 일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무엇, 내면을 향한 고독한 작업인 걸까, 얼마 전 울산박물관에서 귀한 강연이 있어 다녀왔다. 사진가 김아타의 강연이었다.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는 길이 즐거웠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출입이 많지 않았던 때라 더 설렜는지 모른다. 한국인으로 드물게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당당했고 진취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만의 철학이 뿌리 깊은 나무 같아 강연을 듣는 내내 즐겁고 흥미로웠다. 그만의 사유 때문인 걸까.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사람이었다. 한 컷의 사진을 위해 몇 개월 몇 년을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만의 세계가 분명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가 시간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고 죽고 사물이 사라져가는 이 지구의 역사를 사진으로 담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부와 힘의 상징이었던 월스트리트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돼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현장을 말없이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준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종일 때로는 몇날 며칠 비바람 속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니라 그의 철학이었다.


강의 중에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었다. 부처님을 얼음으로 조각해 본전에 모시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예불을 드리고 불경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가 가고 오는 공간 속에서 부처는 녹고 녹고 녹아 얼굴도 손도 몸도 사라져가는 장면의 사진 촬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결국 우리는 저렇게 형체도 없는 몸으로 녹고 녹아 사라질 텐데 왜 그리 불안해하며 아웅다웅이었는지. 한 세계가 멸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자연의 섭리를 작가는 일깨워준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는 걸 우리는 알면서도 잊어버린다. 그런 망각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김아타 작가는 또 하나의 사진을 보여준다. 해체다. 자기 안에 갇혀 있거나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주제였다. 김아타 작가는 사람의 얼굴을 찍는다. 아메리칸 사람들, 유럽인, 아랍인, 동아시아인, 흑인과 백인, 아리안, 게르만 어느 인종 할 것 없이 전 세계 사람들의 얼굴을 찍어 합성하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람의 얼굴을 겹쳐 합성하고 합성하면 처음 그의 외형은 없어지고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가 말하는 <셀프 포트레이트>에는 DNA가 모두 다른 60억의 지구인이 사진 속에 녹아 있지만 개체의 아이텐티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나는 너가 될 수 없고, 너 또한 내가 될 수 없으며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나로 존재한다, 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서로가 서로를 존중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마지막 강의를 들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이 좋은 강의를 추진하고 주최한 한국사진작가협회 울산광역시지회분들이 그날 보인 태도에 관해서다. 우린 사진작가와 상관없는 일반사람들이라 초대장에 명시된 시간을 보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 시간은 분명 2시부터 5시로 돼 있었는데 강의는 2시 30분이 훨씬 지나서 시작됐다. 어떤 안내도 어떤 사과의 말도 듣지 못한 채 우린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어떤 한 분이 질문을 던진 건지 항의한 건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아 알 수는 없다. 기억에 남는 건 울산광역지회 회장님이란 분의 목소리다. 그 분은 어떤 일로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목소리를 높이며 멀리 부산에서 왔다고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더러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이 강의 들을 필요 없다고. 당신의 질문은 따지는 것이라며 언짢은 표정과 언짢은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분은 조용히 앉아 침묵했다. 우리도 그냥 조용히 앉아 침묵했지만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술인을 위한 대특강’이라는 제목이 부끄러웠다. 그는 왜 예술을 하는 것일까, 그는 왜 김아타 철학의 진경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묻고 싶었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게 시간, 공간, 이라는 세계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자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이 있어야 그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또 닫힌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까. 서로 소통하고 상생하는 예술이 희망의 아이콘이었을 텐데. 사진 촬영을 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강의실 문을 나서는 걸음은 왜 그리 허우룩하기만 한지.


김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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