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시간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 기사승인 : 2019-05-29 0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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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산촌 통신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자연의 불변성에 기초한 시간(크로노스) 그리고 인간과 사회와 만나 무엇이 결정지어지는 시간(카이로스). 사실 하나도 대단할 것 없다. 절대적인 시간이 질적 변화의 국면까지 충분히 무르익으면 “때가 되었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 축적된 시간과 때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런 때의 기본 중의 기본은 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춘하추동이다. 그런데 요즘같이 5월 하순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사태는, 철이란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그러면 사람은 누구나 불안해진다. 우리는 때와 철을 잘 따라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때와 철을 거스르는 것이 어쩐지 불편하고 위화감마저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7일을 주기로 생활했으나 중국과 우리나라는 24절기를 이용해서 15일을 주기로 생활했다고 한다. 24절기의 배치는 춘하추동 4계절을 6등분해 양력 기준으로 한 달에 두 절기를 배치하도록 구성돼 있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을 따라 15도씩 중국 황하 유역의 기상과 동식물의 변화 등을 나타내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약간의 오차는 있을지언정 우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봄(2~4월)은 입춘(立春)·우수(雨水)·경칩(驚蟄)·춘분(春分)·청명(淸明)·곡우(穀雨). 여름(5~7월)은 입하(立夏)·소만(小滿)·망종(芒種)·하지(夏至)·소서(小暑)·대서(大暑). 가을(8~10월)은 입추(立秋)·처서(處暑)·백로(白露)·추분(秋分)·한로(寒露)·상강(霜降). 겨울(11~1월)은 입동(立冬)·소설(小雪)·대설(大雪)·동지(冬至)·소한(小寒)·대한(大寒).


솔직히 몇몇 절기 빼고는 가볍게 지나치게 된다. 어차피 농경사회도 아닐뿐더러, 개구리가 양력 3월 5일경에 잠에서 깨는 것도 아니다. 재앙과도 같은 온난화에 따르는 기후변화도 심각하고, 울산과 춘천은 체감할 수 있는 기후의 변화가 1주일 차이는 족히 난다. 아무튼 모든 일은 때가 무르익어야 하고, 철을 잘 따라야 한다는 교훈만은 남는다. 마찬가지로 귀농·귀촌도 때가 있다.


시작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동안의 도시적 삶에 대한 회의와 반성. 이것은 자신만의 시간이 축적되어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 20대에 때가 찰 수도 있다. 그러나 책 한두 권 읽었다고 때가 차는 것은 아님을 기억했으면 한다. 70대가 되어도 때가 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에 홀려 때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과정에서도 때가 있다. 제아무리 피와 살이 될 충고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 얻는 깨달음만 못하다. 귀농·귀촌은 특히 그러하다. 보통 3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고, 현장에서 체득한 때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적절한 변신을 한다. 그래서 초기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서 변신을 불가능하게 만들면 매우 곤란해진다.


귀농·귀촌의 시간이 몇 년 무르익은 후, 때를 얻어 시도하는 변신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때와 철에 대한 감각은 도시에서 짐작하고 설계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농촌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야 체득되는 그것이 진정한 감각이다. 때로 마음이 유약하면 때 앞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심하면 우울증으로 아파하는 경우를 본다. 너무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를 아직 못 얻었거나 때를 잘못 측정해서 그런 것이다. 회복될 때가 온다.


만사에 때는 있다. 귀농·귀촌의 때라는 것은, 우선 천지자연의 순리에 맞는 때와 철을 따른다. 또한 나의 몸과 마음을 비롯해 수많은 조건과 변수와 맞물린 때가 있다. 이런 때는 해 뜨고 지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아서 어렵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해 뜨고 지는 것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뜬다고 할 수 있을까? 해가 동해를 완전히 올라올 때인가? 해져서 깜깜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깜깜함인가? 정확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어렴풋한 때는 있다.


때와 철을 모르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다. 귀농·귀촌은 때와 철에 대한 감각을 새삼 일깨우는 일이다. 철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매우 흥미롭고, 예기치 않았던 자족감·충만감이 찾아온다. 물질적으로는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신령한 감각이다. 이 감각을 더욱 잘 살리는 사람은, 귀농·귀촌에 성공한다. 철부지 당신은 잘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말이다.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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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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