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들과 나눈 노동 이야기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19-11-27 09:54:13
  • -
  • +
  • 인쇄
기억과 기록

북구 염포동에 ‘북구예술창작소’가 있습니다. 염포동사무소로 쓰이던 공간이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라 낯설지 않은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한 달 전쯤 낯선 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금나루 그림약국, 단단한 불균형’이란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전시기획자였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참여했던 노동자 구술 작업의 결과물로 나왔던 ‘19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 자료집을 읽었다며 전시회와 관련한 강의를 부탁하더군요. 그러겠다며 바로 약속을 했지요. 


날짜가 다가오고, 강의 자료를 준비하다보니, 강의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네 주민들인지, 노동자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그러던 차에 전시기획자가 다시 연락을 해 왔습니다.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참여자가 많지는 않을 듯하지만, 본인이 매우 흥미로워하는 주제라더군요. 청중이 많지 않을 것을 염려하며 미안해하는 전시기획자의 마음 표현이라 생각했죠. 저는 예술가들이 역사에, 더군다나 노동자대투쟁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강의가 될 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주말과도 같은 금요일 저녁 북구예술창작소를 찾았습니다. 약속시간보다 미리 도착해 지역작가들의 전시작품을 감상하며 기다렸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됐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였습니다. 부산에서도 오고, 양산에서도 왔다는군요. 지역 문화원에서도 왔구요. 대부분 예술가이자 문화기획자들이었습니다. 창작소 운영자와 이번 전시기획자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동원된 참여와 자발적 참여는 하늘과 땅의 차이이니까요. 살짝 긴장이 됩니다. ‘재미’와 ‘감동’은 강의의 필요조건이라 믿기 때문이지요. 친구 부탁이라지만, 멀리서도 왔는데, 헛걸음이 되지 않아야 될 텐데 말입니다. 


영화 ‘1987’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복면 쓰고 등장한 배우가 복면을 벗는 순간 터져 나온 ‘아’라는 탄성도 빼 놓지 않습니다. 영화 ‘1987’은 6월 민주항쟁 과정을 재현한 영화입니다. 6월 민주항쟁은 1985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직선제 개헌’ 요구에 지식인, 청년학생, 노동자, 정치인들이 집결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커져가던 정권에 대한 저항은 ‘4.13 호헌조치’로 더욱 확대됐고 가두시위 중 이한열이 직격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자, 시민들의 저항은 걷잡을 수 없게 됐죠. 정권은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약속했지요. 


우리 역사의 ‘1987’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지요. 울산 현대엔진의 노동조합 결성 운동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울산지역 현대그룹 계열사 사업장의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고, 노동조합이 있던 다른 사업장에서는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 개편하려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울산지역을 넘어 부산경남지역으로,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됐죠. 1987년 한해만 3700건이 넘는 노동자파업이 있었고,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임금인상을 경험했으며, 차별적인 임금이나 비인격적인 대우, 작업환경은 점차 개선돼 나갔지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었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노동자대투쟁’이라고 하지요. 


노동자대투쟁의 맨 앞에 있었던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떠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하고 있었는지, 노동자대투쟁을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얘기를 이어가며 중간 중간 참여자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그리고 눈빛을 주고받습니다. 훌륭한 청중을 만난다는 것은 강사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약속됐던 시간이 지났습니다. 


몇 가지 질문과 응답이 오고간 뒤 강의가 끝났습니다. 강의가 끝나고서야 참여자들의 면면을 대략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고민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습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입니다. 그들 역시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예술이란 노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한 노동의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존재들이죠. 울산 지역에서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의 요청에 좀 더 잘 호응할 수 있게, 공부라는 나의 노동에 적극 매진해야겠습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