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과 오해 사이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19-08-21 09: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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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귀농 첫해에 입양한 개 두 마리와 함께 덤바우에서 살고 있습니다. 15년을 넘기다 보니 개들이 많이 늙었습니다. 그들이 왕성하던 시절 마을 염소들에게 해를 끼친 이래로 묶어 놓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두 마리가 짝하여 마을 뒷산 고라니들을 쫓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때에는 고라니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전혀 없어서 늘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할지를 생각하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측은하고 미안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처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견디고 있을까요? 그들에게 적합한 위로와 돌봄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요?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그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동참할 방법이 있을까요? 과연 그들과 우리 부부 사이에 공유되는 것들이 있어 교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그들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저는 그 해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오랜 삶을 연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그리고 연민의 많은 부분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 생태환경 조성에 유리한 틀밭


저는 농작물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은 하루라도 굶거나 물이 부족하면 금세 반응이 나타납니다. 굳이 교감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 즉각적으로 불편과 위기를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식물은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미욱할 정도로 수동적이고, 결과에 이른 과정을 내색하지 않습니다. 농민 입장에서 보면 악화되기 전에 예측하여 예방할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정보 부족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농작물에 대한 오해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만성적인 과잉보호와 엉뚱한 처방에 전념하는 것이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농작물과는 무관한 자기만족적인 농사방식에 몰두하게 됩니다.


사람과 달리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스스로 완결된 삶의 형태를 지향합니다.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먹을거리에 투자하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생식에 몰두합니다. 이는 매우 배타적인 과정이면서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환경친화라는 것은 주어진 외부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외부 환경은 오랜 세월 익숙해진 생태계 시스템을 말합니다. 배타적이지만, 환경을 거스를 의도는 애초에 없는 것이죠. 어쩌면 이 대목이 농민이 잘 이해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태계 시스템과 그 메커니즘 말입니다. 이는 농작물과 교감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궁극의 목표입니다. 아니 그보다 오해의 여지를 줄여나가는 방편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군요.

 

▲ 가을이 오기 직전의 덤바우

 

자연계의 생명체들이 대개 그렇습니다만, 식물들 역시 탕진의 욕구가 강합니다. 아끼고 남기고 저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의 탐욕은 그러나 절대적인 자원 부족 때문에 생긴 습성입니다. 탐욕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말입니다. 생태계는 매우 가난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형태로 형성되어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잉여에 대한 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농사를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최소한 농경지에 그들을 위한 자원이 넘쳐흐르는 환경이 생긴 것입니다. 일종의 양산체제가 갖추어진 것이죠. 생존에 최적화된 식물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물론 번성의 조건이 되었겠습니다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식물의 삶을 둘러싼 생태계 역시 폭발적 번성의 조건이 마련된 셈입니다. 농업이 생태계 교란의 시발점인 이유입니다. 생존이 번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이상증식의 여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농업 생태계의 현실입니다. 농민의 핵심적인 이해관계는 맛과 크기가 뛰어난 농작물을 양산해내는 것입니다. 이는 농민의 의지와 달리 농작물과 함께 형성되는 농경지의 생태계의 이해관계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자원 부족에 시달리던 온갖 생명체들의 탐식 본능이 일종의 과영양화 상태의 밭에서 이상증식이 일어나 통제할 수 없는 생태계 교란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맛과 크기가 뛰어난 농작물을 양산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런 점에서 농민은 농작물과 그들을 둘러싼 생명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자원부족 상태에서 생존하는 법’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밭에 투입되는 것들의 적정성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자 농작물 고유의 특성을 잘 발현하도록 이끄는 농법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먹을거리의 일정한 품질을 보장하는 현실적 목표에 부합하는 실천적 고민이기도 합니다.


오해의 여지가 적은 농작물과의 교감에 관해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토착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농업에서도 한때 토착이라는 말이 화두였습니다. 토양 미생물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농토의 건전성은 다양한 미생물의 분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이는 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성찰입니다. 생태계의 굳건한 하부구조를 지탱하여 농사의 수월함과 농작물의 고품질을 가능케 해주는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미생물입니다. 

 

▲ 고소해지려고 핀 참깨 꽃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이른바 토착미생물을 효과적으로 농토에 이식함으로써 토양 미생물 부족이나 편협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토착미생물은 농지 주변의 산에서 채취한 것을 말합니다. 낙엽이 썩어 흙이 된 부엽토에는 미생물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채취한 부엽토에서 미생물을 추출하고 배양하여 농지에 넣음으로써 유용한 미생물을 토양에 이식한다는 것이죠.
토착미생물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우선 농토와 산은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생태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미생물의 생존방식에 비추어 단순이식은 거의 불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미생물 자체는 농작물의 영양원으로서는 미미한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비료 대신 무작정 미생물만을 주입한다면 미생물도 농작물도 살아남기 어려운 것입니다. 셋째, 미생물은 이식의 대상이 아니라 출현의 주체로 보아야 합니다. 유기물을 발효시킬 때에 토착미생물을 함께 넣어주면 숙성과 발효과정이 원활하고 그 시간도 단축됩니다. 퇴비를 만들 때에도 넣어주면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밭에 직접 투입하는 경우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합니다. 단기적으로 소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식되지는 않습니다. 만일 밭의 환경이 들과 산의 그것과 유사하다면 굳이 넣어주지 않아도 기대하는 미생물이 출현합니다. 미생물이 출현의 주체라는 것은 미생물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발호할 기회가 없는 상태일 뿐입니다. 물론 어떤 환경에서는 사멸할 수도 있습니다만, 환경이 그들에 맞게 개선되면 반드시 어디선가 나타납니다. 농지의 토양환경이 개선되면 없던 미생물들이 나타나고,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토착미생물의 주입보다 토양 환경 개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토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쉽고, 효과가 높은 방법은 유기물 투입입니다. 농민들은 보통 퇴비 투입으로 토양 유기물 보충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유박 등 유기질 비료를 유기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기물에서 유래한 것과 유기물은 토양에서의 역할과 기능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아직도 많은, 양파 더 드세요~


우리 부부가 늙은 개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자주 쓰다듬어주고, 사료 대신 맛있는 것을 끓여 먹이고, 잠시라도 그저 무심히 곁을 지켜주는 게 모두입니다. 그것이 우리 부부를 위한 것인지 개들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도록 오랜 세월 길들여진 그들이 과연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관계의 소중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곁을 나누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우리 부부가 기르는 농작물에 대해서는 반려한다는 결기보다는 그들대로 사는 방식을 최대한 존중해야 얻을 것이 많다고 믿습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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