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 기사승인 : 2019-07-03 09: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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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책은 뇌 과학자의 뇌출혈 체험기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항에 적용하는 것을 칸트는 ‘판단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야 말로 ‘판단력’에 관한 책이다. 그동안 뇌 과학자로서 인간 뇌의 보편적 작용과 보편적이지 않는 뇌의 보편을 연구한 학자에게 갑자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뇌의 현상이 더 이상 보편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겪는 개별적인 사태가 된 것이다. 뇌 과학자로서 판단력을 적용할 때가 온 것이다. 테일러 박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모든 질환은 개별적 사태다. 아무리 통계와 평균으로 보편을 만들어내도 개인에게는 언제나 유일한 사태다. 통계와 평균은 양극단을 제거한 차가운 숫자놀음이다. 물론 통계와 평균 그리고 일반론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론은 타인에게 그리고 후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용이한 수단이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이토록 전해질 수 있고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도 그 일반론의 힘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것이 개별적인 사태에 들어올 때는 일반론이 중요한 지침은 될지언정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중요하다. 인류가 현재 가진 뇌 과학 지식의 최대치를 개별적 사태에 오롯이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는 전 인류적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의 골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가 뇌졸중 환자로서 겪는 체험이다. 둘째는 생물학적인 사태로서 좌뇌의 기능과 사유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에 어쩌면 단일한 하나의 물음일 수 있다. 


우리는 뇌량으로 양측 반구가 정교하게 얽혀 있는 덕분에 스스로를 단일한 개인으로 지각한다. 하지만 그 얽힘이 파괴됐을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테일러 박사는 좌뇌에 출혈이 생겨 그 기능이 마비된다. 그러자 숨죽여 있던 우뇌의 기능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테일러 박사는 그 상태를 ‘존재의 상태’로 표현한다. 타자와 나와의 구별은 없어지고 평화와 전일한 느낌이 자신을 감쌌다고 말한다. 치료과정 중 그 상태에서 나와 분별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다고도 말한다. 여기서 좌뇌의 기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좌뇌는 이른바 ‘해석기 기능’을 하는 것이다. 앞에 놓인 사태들을 분별하고 구별해 스토리를 끊임없이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끊임없이 지껄이는 이 좌뇌의 소리에 압도돼 분리되고 고립된 개체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각자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예상외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뇌의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일까? 이는 ‘자유의지가 인간에게 가능한가’ 라는 문제와 더불어 문화 전쟁을 촉발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과학계가 ‘자유의지는 환상이다’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우리는 수많은 도덕적, 법률적 물음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테일러 박사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사고패턴은 다차원적 회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회로를 관찰하는 것과 그 회로에 관여하는 것을 통해서 자유의지가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테일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운전대를 잡고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아찔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외쪽 뇌와 오른 쪽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건강하게 조화시키려고 지금도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우주만큼 거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한 줌의 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p153)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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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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