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은 신여성이 아니외다. 복잡한 정체의 사람이외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19-11-20 09: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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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서양화가이자 작가, 여성해방운동가 나혜석에 대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자기소개’라고 하는 말로 말입니다. 지금 독자 여러분에게 저를 소개하자면 “울산시민이고,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30대 여성입니다.” 정도가 되겠네요. 다른 시간과 장소,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내 정체를 밝힐 때는 소개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는 딸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국민이고 아시아인, 지구인, 비장애인, 이성애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정체성과는 다른 모습의 요구돼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여기는 걸까?’라고 혼란스럽고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직업인이 아닌 성별에 따른 외모와 성품이 요구되기도 하고, 가족관계가 아님에도 ‘딸 같아서,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불편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한편, 내가 소속된 어떤 집단의 성품으로 여겨지는 것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할 때, 기존의 정체성과 구별돼 불립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려는 나혜석은 ‘신여성’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1896년에 태어난 나혜석은 2019년 사회에서 볼 때도 여전히 새로운, 유별난 여성입니다. 나도 종종 ‘신여성’이라는 호칭을 듣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결혼한 후 설날은 시가 먼저, 추석은 처가 먼저 간다는 우리 부부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담아 나더러 ‘신여성’이라 했지요. 


신여성으로 불리는 나혜석 역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식민지의 국민으로서 1919년 3.1운동 당시 비밀 집회를 열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부르주아 계층으로 근대적 이론을 접한 유학생이었고 서양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봉건시대에 태어난 여성으로 근대 여성해방운동의 사조를 접하고 가부장 제도의 모순을 깨달아 여성운동을 시작합니다. 글을 써서 조선의 여성들을 계몽하고자 했고 조선 사회를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4주 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인물인 작가 ‘김명순’과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일명 ‘신여성’으로 불리던 그들, 조선사회는 김명순과 나혜석을 거부했고 그들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1948년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죽었다고 기록됩니다. 


나혜석의 남편은 1931년,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나혜석의 불륜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이자 봉건사회의 여성이기도 했던 나혜석은 이혼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조건부 협의이혼을 하게 됩니다. 협의이혼이라 하지만 재산분할도 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이혼 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나혜석은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면서 다시 스캔들의 중심이 됐고 조선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 중에는 작품을 폐기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1934년 나혜석은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그는 조선사회의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합니다. 스스로를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밝히는 그의 글은 조선사회에서 그를 매장시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겼어야 했을까요. 


수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는 ‘이혼고백서’의 문장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조선의 남성들 보시오. (중략)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작가 김명순의 유언처럼 나혜석의 글도 훗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로 향합니다. 그를 기존의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달리 ‘신’여성으로 불리게 만든 가부장제의 현실이 먼 훗날에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을 때 하는 말이 있지요. 그래도 사회는 진보한다. 사회의 비판적 시선과 낙인에도 자신의 정체를 당당히 밝히는 사람들을 보면 사회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글에서 여러 번 썼던 ‘신’여성이라는 말을 취소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정체성과의 구별을 두기 위해 따로 붙여진 이름을 거부합니다. 김명순도 나혜석도 ‘신’여성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나혜석은 조선의 서양화가로, 여성해방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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