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기분 탓

김루 시인 / 기사승인 : 2020-01-16 10: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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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세상

새해가 돼도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신문을 봐도 뉴스 채널을 돌려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세상엔 너무 똑똑한 사람이 많다. 세상엔 너무 잘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왜 존경할만한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지, 잘난 것도 없고 인지능력도 더딘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일들로 요 며칠 머리만 복잡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지인의 전화다. 근무하는 시간이라 나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늘은 나가야만 할 것 같아 퇴근을 일찍 서두른다. 월요일이 박물관 휴관인 줄 모르고 약속을 그곳으로 잡았다. 차를 몰고 약속장소로 나가니 그들은 도로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그녀들은 히치하이킹 흉내를 내며 무작정 바다로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햇살이 봄 같다. 이런 날 떠나야지. 사무실 문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어느새 맑은 하늘에 매료돼 즐겁기만 하다. 겨울 날씨가 아니다. 봄날이다. 1월의 날씨가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 거야. 공원에는 개나리며 철쭉, 심지어 수선화가 환하게 피었는데. 운전하면서도 급격하게 변화돼 가는 환경 얘기부터 시작해서 호주의 산불 얘기, 무분별하게 변화돼 가는 도심의 문제점까지. 얘기 삼매경에 빠져 네비가 일러주는 길도 우린 놓칠 뻔했다. 목적지로 정한 바닷길로 접어들자 여인들은 처음 보는 바다인 것처럼 설레한다. 이런 기분으로 떠나는 거지.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 순간 행복하다. 행복이란 게 뭐 별거냐, 하는 얼굴로 가고자 했던 커피숍을 찾아 나선다. 


바닷가 옆 어디에 있겠지하고 생각했던 커피숍은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사람들은 찾아온단 말인가.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정보화시대라지만 차 한 잔을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이런 생각을 하다 나를 돌아본다. 차 한 잔이 아니라 힐링이 필요해서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현실에서 잠시라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바다가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산 중턱이어서 그런지 바다가 훤히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인다. 월요일인데도 빈자리가 없는 커피숍. 시내 한가운데는 손님이 없어 울상인데 이곳은 손님이 가득이다. 커피값도 시내보다 비싸다. 하지만 잠시라도 이곳에서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건 값으로 얘기할 수 없는 문제지.


옛말에 사람이든 자연이든 좋을수록 거리를 두라는 말이 있다. 바다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때로 두려움이 된다. 꽃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꽃잎의 상처가 먼저 보여 아름답다는 생각을 잊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으면 좋을수록 조금 거리를 두고 예를 다하는 관계를 가지라고 한다. 우린 오랫동안 서로 알았지만 만나면 반갑고 고맙고 서로 애틋하다. 뭔가를 나누지 못해 아쉽고 토닥여 주지 못해 미안한,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이면 이런 풍광을 갖지 않을까. 


바라보는 바다가 내 손가락을 꼭 움켜쥔 아이의 눈망울 같다. 품에 나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품속 같아 포근한 바다. 이는 순전히 내 기분 탓이겠지만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날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한 번 앉아 볼 일이다. 사는 게 뭐 별건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세상도 내가 변하면 변한다는데, 깊어지고 멀어지고 출렁하는 여긴 내가 사랑하는 심연이다. 


김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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