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마시다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0-09-10 1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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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 국 운남성 애뢰산 천가채에 있는 2700년 된 차수왕 나무.

 

차(茶)는 기호음료(嗜好飮料)이기에 순전히 차의 성분만을 가지고 가치를 논한다면 굳이 비싼 차를 구하고 마실 필요가 없다. 신이 이 땅에 내려준 최고의 음료인 차를 몸에 좋다는 이유로만 평가하고 즐긴다면 조물주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기호음료란 먹는 것 외에도 즐기고 좋아하고 기념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음료다. 그래서 찻자리가 중요하고 팽주(烹主)가 누군가를 따지는 것이다. 차를 즐기는 사람의 기호(嗜好)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므로 가격의 격차가 실로 엄청나다. 찻잔 속에는 맛과 향, 기와 멋 그리고 효능과 역사가 담기며 좋은 찻자리에서 차의 진가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차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어느 날 차를 마시다 궁금한 것이 있어 자리를 접고 청허당(淸虛堂) 차실로 달려왔다. 문제는 역시나 보이차(普耳茶)의 생차(生茶) 숙차(熟茶) 논쟁이었다. 생차와 숙차는 가격차가 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숙차를 마셔도 몸이 뜨거워지고 땀도 나는데 왜 숙차는 천덕꾸러기냐는 것이다. 나는 다 좋은데 시장형성이 그렇게 되었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정확한 설명을 하자면 차의 근본부터 종일 앉아서 강의해야 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라면 발효차(보이차)는 다른 차와 달리 ‘역사를 마시는 것’이다. 역사를 마시고 의미를 부여하고 즐기는 순간 생차 숙차 논쟁은 바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보이차는 한 잔의 차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기고 변화되는 묘미(妙味)가 가득하니 실로 한 사람의 ‘차 사랑’과 ‘역사’를 마신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차 시장에 가면 차성(차판매점) 사장이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고는 삼성그룹 이 회장의 이름을 대며 엄지척을 한다. 이유를 알아보니 오래 전 상하이(上海) 차 박람회에서 보이차 경매 시장이 열렸는데 약 70년 된 보이차가 경매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 보이차 매니아인 삼성의 이 회장이 1억 원을 주고 최종 낙찰자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 차 경매 역사상 최고가란다. 물론 생차다. 숙차는 얼마나 오래된 차인가가 별로 의미가 없다. 보이차가 ‘몇 년산’이냐는 말은 생차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이 회장은 역사를 담은 귀한 차를 소유하게 됐고 아직도 살아있는 기와 맛을 음미하고 향을 느꼈을 것이다. 차의 성분만을 따진다면 시중에 몇 만 원짜리 보이차와 뭐가 다를까.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차 시배지에 수백 년 된 차나무가 있다. 천 년 된 차나무라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100년 정도 된 차나무였다. 후일 문화재청에서도 100년으로 추정되는 차나무로 발표했다. 오래전 이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녹차를 만들었는데 경매에서 어떤 스님이 1000만 원에 낙찰 받았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천 년 된 나무니까 일 년에 만 원으로 계산하니 1000만 원이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역사를 마시고 싶었고 쌍계사 차 시배지에 유유히 흐르는 이야기들을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20년 만에 차 시배지를 찾고 화개면 정금리 차수왕(茶樹王)을 찾은 때가 2012년 어느 봄날이었다. 옛날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무슨 관광지에 온 기분이다. 지나가는 동네 할아버지께 차수왕 잘 있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죽었시유”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차나무는 죽었고 나무 둥치는 말라 있었다. 영문도 모르게 죽었다는 것인데 내가 둘러본 결과 영문을 알 것 같았다. 야생은 자연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이 오니 차나무 주인이 나무 아래 부분에 돌축을 쌓고 계단을 만들었다. 더 이상 야생이 아니다.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가함이 없이 절로 그러함인데 참으로 인위적이고 자연을 역행한 것이다. 


이렇게 차수왕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욕심 많은 농부가 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차 시배지에서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가서 차 종자를 가져와 심은 김대렴(金大廉)의 이야기와 차수왕의 백 년 역사를 마시고 싶었던 내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중국도 운남성 애뢰산(哀牢山) 천가채(千家寨)에는 2700년 된 차수왕(茶樹王)이 자라고 있는데 야생 그대로 국가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정하고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야생 차나무로는 현재 지구상에 분포하는 모든 차나무 중에 가장 오래된 나무다. 그래서 이 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고가로 팔리고 있으며 지금도 천가채에는 역사를 마시고자 하는 차인들이 줄을 지어 찾아들고 있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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