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때가 됐다. 지금 차별금지법에 응답하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 기사승인 : 2020-08-19 10: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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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020년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를 얻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바로 다음날인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평등 및 차별금지법안’의 제정을 촉구했다. 때마침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와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구성된 제21대 국회 지형도 이번만큼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차별금지법’이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14년간 혐오정치를 휘둘렀던 세력들의 반대 움직임도 거세다. 여전히 일부 보수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 입법시도에 즉각 반발하며 기자회견과 집회로 맞서고 있고, 대다수 정치인들은 여론을 저울질하며 좀처럼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현실이다. 그러나 차별하자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차별금지법이 지금, 여기 필요한 이유가 더욱 또렷해질 뿐이다.


우리나라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제정을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17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당시 제출된 법무부 입법예고안은 전경련과 극우 개신교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입증책임의 전환,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등 주요 내용과 함께 일곱 가지 차별사유, 즉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이 삭제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이후 2013년 5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바 있으나 이 또한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의 공세로 주저 앉아버렸다. 이후 단 한 번의 발의조차 성공하지 못한 채 7년이 흘러갔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사유가 삭제됐던 2007년 이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며 수많은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 


14년 역사 속에서 차별금지법은 온갖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극우세력의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법안의 내용과는 별개로 개신교에서는 이미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찬성법안’이라는 등식을 확정하고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의 아킬레스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급기야 서구의 68혁명까지 동원해 ‘차별금지법’=‘동성애 찬성법안’=‘사회주의 사상유포’라는 극단적 논리 전개도 서슴지 않는다. 쇠락해가고 있는 개신교의 부흥을 위해서 개신교의 집결이라는 내적 요인도 작동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튼 이 시기를 거치면서 반동성애 운동과 개신교의 극우화 경향도 가속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평가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악의적 공격과 오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소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설교도 마음대로 못 한다’는 막무가내식 극우 개신교 측의 억지에 논리적으로 답하기란 솔직히 만만치 않다. 사실 설교는 차별금지 영역에 해당하지 않아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나, 차별금지법이 모든 일을 규율하는 것도 아니며, 우리 생활에서 필수적인, 그리고 자의적인 차별이 수시로 생겼던 4개 영역에서만 작용한다는 사실,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만 차별을 다루는 기본법으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법안을 잠시만 살펴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토론과 팩트체크를 동반한 가짜뉴스 점검에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논란은 법안의 내용이 아닌 진영논리로 이미 바뀌어진지 오래다. 


신념과 신앙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내심의 자유를 넘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공공연하게 차별을 선동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의 주장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지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고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추구해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의 범죄적 행위를 계속해서 묵인해서는 안 된다. 묵인은 혐오와 차별의 확산을 부추기는 것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 


이제 때가 됐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21대 국회는 우리 헌법과 법률에서 명시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 답해야 한다. 그동안 국회와 정부는 ‘사회적 합의’라는 프레임으로 소임을 회피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예시켜왔다. 그 결과 ‘차별금지법’이 유예되는 동안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의 인권침해는 가중돼 왔다. 코로나19 재난시기를 거치면서 누구나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은 ‘차별금지법’이 왜 지금 당장 필요한지를 증명할 뿐이다.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굳이 세계인권선언의 평등조항까지 소환하지 않더라도 ‘해도 되는 차별은 없으며, 차별받아도 괜찮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진리 앞에 논란이란 있을 수 없다. 


176석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헌법가치를 지켜내는 시작이다.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구제하는 입법조치는 기본 중의 기본이자 출발선이다. 오히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없는지 살피고 보완하는 더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흐름이다. 


이제 때가 됐다. 더 이상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 때문에 고용이나 교육,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그리고 행정서비스 영역에서 차별받는 이들이 없도록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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