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일 싱글라이프 체험기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07-05 10: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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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뒷산에 반려견(그냥 집 지키는 개)을 데리고 자전거를 타러 간다. 1시간 정도 거칠고 위험한 산길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며 내면에 있는 폭력성과 스트레스를 분출한다. 그리고 샤워 후 아침을 먹고 생존경력 17개월 아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선다. 실질적인 양육자인 어머니가 언제 가르쳤는지 허리 굽혀 인사도 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헤어질 때 기쁨의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집을 나선다. 물론 출근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오늘은 나만 아는 월차다. 


월차라고 공식으로 가족에게 알리면 분명 나에겐 꿀맛 같은 휴식보단 육아의 하루를 보낼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출근하는 척하면서 집을 나선 것이다. 오늘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며 그런 날이다. 운전하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매일 같은 시간에 EBS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미없는 영어방송에도 평소와 다르게 신이 난다.


어디로 향할까, 일단 영화를 보기로 한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평일 아침이라 무척 한산하다. 백수가 된 듯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자유가 느껴진다. 그렇게 영화를 내리 두 편이나 연속으로 보았다. 문화적 욕구를 채웠으니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진다. 극장 주위에 있는 식당가를 대충 둘러보고 혼밥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들어가 주문을 한다. 무인주문기라 혼자 왔냐고 크게 물어보는 직원이 없어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 밥을 다 먹고 근처 쇼핑몰에서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바지와 티를 하나 산다.


아내와 아이와 같이 왔다면 이런 여유는 없었을 것이며 괜히 눈치가 보여 쇼핑도 맘대로 못했을 터인데 역시 혼자 오니 쇼핑의 만족감이 아주 크다. 역시 돈은 저금할 때보다 쓸 때가 가장 좋다. 뭐할까 고민을 하다가 서점에 들러서 교양을 한껏 장착한 사람처럼 절도 있는 몸동작으로 신간을 둘러본다. 그렇게 책을 한 권 골라서 서점에 있는 자리에 앉아 책을 보니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진다. 엎드려서 잠을 잔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내 뺨엔 시뻘건 손자국이 났고 입엔 침이 묻어있다. 침을 닦으며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초저녁이다. 


친한 친구 녀석에게 전화하니 다행히 일정이 없다고 해 같이 밥을 먹기로 한다. 요즘 핫하다는 식당을 검색해 음식을 주문하고 맥주도 한잔하니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 오랜만에 맛보는 싱글 라이프란 이런 것이구나.


아직 미혼인 친구에게 매일 이렇게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고 푸념을 하니 그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혼한 내가 부럽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랑 한참 남자들의 수다를 떨며 아직 연애 전선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지만 설렘이 있는 친구의 삶이 나은지 이미 짝을 찾아 안정감은 있지만 반면에 가슴 뛰는 경험이 없는 나의 삶이 나은지 실랑이를 벌인다. 답도 없는 설전을 한참 벌이고 나니 슬슬 재미가 없어지고 지쳐간다. 예전 같으면 근처 피시방이나 만화방 탁구장 등에 가서 다시 무언가를 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친구랑 헤어지고 거리를 방황하니 살짝 외로워진다. 이젠 집에 진짜 갈 시간이다.


집에 들어가니 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어설픈 걸음으로 뛰쳐나온다. 아이를 안으며 다음 월차엔 어떻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지 생각한다.


이번 글은 아내가 읽지 않길 바라며.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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