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은 건널목을 만들고, 효자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20-07-08 10: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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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효자역 인근 지곡 건널목에서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주인공 제제의 친구 뽀르뚜까가 건널목 기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리라. 다섯 살 꼬마 제제는 가족과 또래는 물론 스스로를 쓸모없다 여기는 열등아다. 어느 날 제제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일명 ‘박쥐 놀이’ 뽀르뚜까의 달리는 자동차에 매달리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더 없는 친구 사이가 되지만, 어느 날 뽀르뚜까는 기차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난생 처음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게 된 제제는 며칠 동안 심한 열병을 앓고는 더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의 또 다른 자기,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와 작별하며 유년의 건널목을 어느새 뛰어넘는다.

 

▲ 효자역 전경. 폐역 후 역명판 등을 합판으로 가렸다.

효자역에서 시내 방향으로 조금 걸으면 지곡건널목이 나타난다. 이곳은 포항역이 시내에 있을 때만해도 포항철강공단으로 가는 괴동선의 분기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지금은 흥해로 포항역이 이전하면서 생긴 포레일과 ‘괴동선’을 크게 대비시키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포레일은 약 100여 년 동안 포항 도심을 가로질렀던 동해선 철길이 이설되면서 산책로로 탈바꿈한 곳이다. 폐선로 활용과 녹색생태도시 조성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곳이다. 총 6.6km 구간은 불의정원, 음악분수 등의 각종 조형물을 자랑하며 포항시민에게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명품길이 됐다. 

 

▲ 건널목을 전망으로 하는 구멍가게와 뒤쪽 커피집.

지곡건널목을 처음 찾았을 때 건널목 뒤 두 개의 건물이 필자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하나는 건널목에 바짝 붙은 구멍가게이며, 또 하나는 차도 뒤편의 창 넓은 커피집이다. 업종이 다르지만 두 곳은 특별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가 건널목을 내다보는 창을 갖고 있으며, 두 가게에 앉은 사람 모두 차단기가 내려오고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건널목을 응시한다는 점이다. 

 

▲ 건축미가 돋보이는 포레일 화장실 모습.

 

▲ 커피집에서 바라본 지곡건널목.

우리나라 도심에서 이제 이 같은 철길 건널목을 볼 수 있는 곳도 흔치 않다. 동해선 선로만 해도 부산, 울산, 경주, 포항에서 모두 시내 외곽으로 이설 중이며 신설 철길은 하나같이 고가나 터널로 설계돼 도로 등의 간섭을 피하고 있다. 근처 주민에 따르면 괴동선도 지역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이설 계획을 내놓는다고 하니 어쩌면 이 건널목도 빠른 미래에 사라질지 모른다. 여하튼 지곡건널목의 커피집과 구멍가게는 호수나 강, 바다 같은 빼어난 전망 대신 한 동네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간직한 철길 건널목을 바라본다.

 

▲ 포레일 ‘불의 정원’. 포레일 조성 중 분출된 천연가스를 활용했다.

한때는 점방이란 이름이 더 익숙했을 구멍가게부터 들어가 봤다. 냉장고에서 캔음료 하나를 꺼내 들며 쓱 훑어본 진열대는 척 봐도 세월의 묵은 때가 배어난다. 라면, 소주, 일용잡화 등의 생필품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네 아저씨 세 분이 창가 쪽 나무 테이블에 앉아 제각기 혼술 중이다. 오랫동안 가게를 지켰다는 아주머니는 과거 장사가 잘 될 때의 풍경을 무용담처럼 들려준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등하교 길 아이들이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었으며, 퇴근길 철강공단 노동자들이 ‘막사’(사이다를 섞은 막걸리) 한사발로 노동의 피로를 씻어 내던 곳이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얘기 중에 건널목의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아저씨들이 천천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 포레일 시작점. 포항역 이전 후 폐선로가 훌륭한 산책로로 거듭났다.
▲ 포레일 얼굴 조형물. 철강도시답게 철판으로 만들었다.
▲ 포레일 ‘와이파이’ 간판. 시민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인상적이다.


다음은 구멍가게에서 나와 차도 뒤편의 커피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독서 중인 사람, 노트북을 펼치고 열공 중인 사람, 팥빙수를 먹는 사람 등 제법 많은 사람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건널목이 훤히 내다보이는 큰 창가에 앉았다. 커피를 다 마셔 갈 즈음 또다시 건널목의 차단기가 작동했다. 휴대폰게임을 하는 학생, 강아지와 산책에 나선 아주머니, 오토바이에 짐을 가득 실은 택배아저씨 등이 건널목 앞에서 일제히 멈춰 섰다. 그리고 두 개의 차단기 앞에 마주보고 선 사람들 사이로 일기장 같은 화물기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김용택 시인은 건널목이란 시에서 자기 삶을 이렇게 고백했다.

건널목

김용택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배운 대로 살지 못했다.
늦어도 한참 늦지만,
지내놓고 나서야
그것은 이랬어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다음 발길이 닿을
그곳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한걸음 딛고
한걸음 나아가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건널목에
서 있다.


굳이 이 시를 빌리지 않아도 인생이란 건널목과 후회의 연속이다. 문제는 3차원 공간에서의 건널목은 후진할 수 있지만, 인생의 건널목에서는 제아무리 지난 시간을 후회하더라도 뒤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후회 없는 과거란 있을 수 없으며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분명한 것은 눈앞의 건널목은 어느새 지나고 또 새로운 건널목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아모르파티’, ‘카르페 디엠’이란 말로 스스로에게 자꾸 주문을 거는 것이다.

 

▲ 포레일 증기기관차 조형물.
▲ 포레일에 짧게 남겨둔 옛 동해남부선 선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이곳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점이다. 목숨 건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아무리 바쁜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는 무조건 멈춰 서야 한다. 새치기나 급행료가 통하지 않는다. 다음 편을 위해 남겨야하는 비망록 같은 곳이랄까. 띠리리 띠리리 청각도 열어야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일념뿐인 내 발목의 관성도 제어할 수 있다. 기차라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대한 가림막이 내 앞을 통과할 때까지는 건널목 저 너머보다는 현재의 나에 집중해야 한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차단기가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 효자역 뒤편 효자시장 입구 전경.


한편,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는 ‘상실’이란 이름의 건널목을 가까스로 건너면서 자칫 탈선했을 지도 모를 자기 생을 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작가 J.M. 데 바스콘셀로스는 ‘상실’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누구나 때가 되면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살아가는 도중의 일이란다. 기운 내렴. 제제. 누구라도 서로 잊지 않고 가슴속에 깊이 품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단다.”
 

▲ 효자역 인근 지곡건널목 안전요원. 기차가 오기 전 수신호 중이다.

효자역. 효자역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위치한 동해남부선의 폐역이다. 예상되는 바와 같이 효자동은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를 배출한 전설에서 지명이 유래한다. 197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2015년 포항역이 흥해로 이전한 뒤 폐역조치됐다. 괴동선이 분기하는 곳으로 한때 포항, 양자동, 효자, 괴동간 포스코 통근 열차가 다니기도 했으며 꽤 많은 승객들이 이용했다. 한편, 포항역이 흥해로 이전하면서 효자역 지곡건널목에서부터 구 포항역에 이르던 폐선로는 숲(Forest)과 철길(Rail)이 합쳐진 말 ‘포레일’로 거듭나 포항 시민들에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명품길이 됐다.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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