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와 운영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19-03-06 10: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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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 봄맛, 냉이

 

전북 완주군은 우리나라 로컬푸드의 성지로 불립니다. 2008년 처음으로 시작된 완주군의 로컬푸드 사업은 꾸러미 장터와 이동식 판매장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에 와서는 12개 로컬매장이 있으며, 공공 급식 사업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간 6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2천여 농가가 매달 평균 150만 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완주군의 로컬푸드 정책은 투 트랙으로 이루어집니다. 규모화 된 대농과 소농을 시장 특성에 맞게 조직화하여 판매 전략의 갈래를 나누는 것입니다. 농산물 유통방식에 유연성을 주는 동시에 집중해 농가의 성격에 맞는 소득원을 개발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는 다양한 소비자층의 이해관계에 대응하는 것이어서 시장에서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완주군의 이러한 생산기획체계는 10여 년의 연륜을 거치면서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가 완주군의 선구적 업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개입한 지방자치체입니다. 완주군의 로컬푸드 운동은 철저히 관 주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군에서는 대부분의 마을에 공무원을 파견하여 상주시키다시피 하면서 농작물 생산을 조직화하였습니다. 기획생산을 도모한 것인데, 이는 농민 스스로가 결행하기에는 너무나 위험 부담이 큰 결단입니다. 군은 일정한 유통방식을 제공하고, 비교적 장기적인 전망과 함께 손실분을 메워줄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농민의 불안을 잠식할 수 있었습니다.

 

▲ 겨울을 견디고 난 꽃(루꼴라)


그런데 완주군의 성공적인 로컬푸드 운동 정착 사례가 전국적인 차원으로 확산되고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부 차원에서 2015년 ‘지역농산물 이용 촉진 등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6년 11월 말 현재 직매장 148개소를 지원하여 운영토록 하고 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농사를 짓는 제가 보기에 그렇습니다.


객관적 분석이라고 자신할 수 없지만, 저는 그 원인을 로컬푸드 초기 단계에서의 생산자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컬푸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일부 생산자들과 시민단체 등의 활동가나 조직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하였습니다. ‘농산물 제값 받기’라는 슬로건으로 소비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참여 농가들의 유연성 부족으로 생산구조를 소비자 욕구에 맞게 충족할 수 없었고, 편협하고 비슷한 농작물의 반복 제공은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더구나 회원 확보의 어려움과 택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물류비 부담 등은 매출 구조를 악화시켰습니다. 생산자 주도의 로컬푸드 운동이 동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로컬푸드의 개념을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열의를 가졌던 생산자 그룹이 와해되는 상황에서 정책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지자 자연스레 로컬푸드 운동은 관 주도형으로 변하게 됩니다. 얼핏 보기에는 원주군의 길을 걷게 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자체들은 농민들에게 밀착하여 생산을 조직하는 노력보다는 매장 등 유통 인프라 구축에만 매달렸습니다. 더욱이 본질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 운영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통구조가 생겼다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로컬매장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확인됩니다. 생산자인 농민들 역시 로컬매장의 지속성과 수익의 안정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상시적인 이벤트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한편 생산자 그룹의 로컬푸드 운동의 왜소화 또는 실패는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큽니다. 우선 소규모 자영농의 활로를 스스로 모색하고, 적용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영세소농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죠. 둘째, 소비자와의 연계 또는 연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농산물 가격과 품질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레 상호 이해관계의 폭을 확장시키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셋째, 뼈아픈 교훈입니다만 감성적 유대와 거기서 비롯되는 신뢰는 지속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농민들이 자책할 사안도 많습니다.

 

▲ 이른 봄, 밭 둔덕 정리

로컬푸드 운동의 목적은 생산자의 소득기반을 구조화하고, 소비자에게는 바람직한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자는 것입니다. 농사 방식을 건전하게 유지하여 친환경을 이루자는 취지도 담겨있습니다. 소득기반의 구조화는 생산기획체계를 의미합니다. 지역농업에서 진행되는 생산, 가동, 유통, 판매, 소비의 순환을 담아낼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구축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와 참여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욕구 충족,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상호 간의 신뢰가 핵심입니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신뢰가 로컬푸드 운동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 되는 것은 이 운동이 새로운 유통체계 구축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통체계만으로는 특히 소규모 생산자의 소득을 보전한다거나 소비자의 농산물에 대한 기대를 충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기존의 농산물 유통 시스템은 로컬푸드 유통의 심각한 장애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농산물 유통은 경매체제에서 시작됩니다. 전국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농산물의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 경매장입니다. 경제적 요인으로만 가격이 매겨진다 해도 농산물의 특성상 농산물의 가격은 연중 요동칩니다. 여기에 중간상인들의 매점매석식 유통 교란이 더해지면,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은 상시화됩니다. 로컬푸드 매장이 지향하는 안정적 가격, 또는 가격의 생산자 결정권을 여지없이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도권의 유통체계가 로컬푸드 운동에 참여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해상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상호간의 신뢰가 핵심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시장원리가 아니라 가치의 원리, 농산물 고유의 특성에 관한 재발견이 참여자들에게 공유되고 존중될 뿐 아니라 강고한 지지가 없다면 로컬푸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운영 주체가 절실하다는 말씀입니다. 지자체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계는 중개자 역을 겸하는 운영 주체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 손이 바빠지는 포도밭(샤인 머스켓)

운영 주체는 농민일 수도 있고, 소비자일 수도 있으며, 시민단체일 수도, 협동조합일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생산자 조직과 생산기획에 적극 개입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하고, 소비자에 대해서는 생산자 조직이 택한 농사방식과 출하 형태와 관련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격 결정 등 첨예한 관심사에 대해서는 작물의 품목별 안정적 가격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운영 주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해충돌도 그렇지만 자발적 양보로 인한 감성적 접근의 폐해가 더욱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동질감과 감상적인 연대의식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순환이라는 목표가 쉽게 무너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로컬푸드 운동에서 부담이 더 높은 측이 생산자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생산자 조직과 생산기획은 개별 농가의 농업경영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규모에 따라서는 일반 유통과 로컬푸드 유통을 겸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수취가격 대비 매출 규모에 혼란을 가져다주어 경영이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생협의 간접 직거래 유통방식은 소비자의 선호도도 높고, 그 운영도 모범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역의 생산자단체에게 최소한으로 부가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출하량과 운송 부담 그리고 생각보다 높지 않은 이익으로 인해 농협 등을 통한 계통출하보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식이면 기존 유통체계를 지지하는 하위 유통망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큽니다. 로컬푸드의 지향에 비추어 생산과 소비에 이르는 유통 순환구조에서 이익이 분배되고 공유되는 지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컬푸드와 운영주체를 고민할 때 생협을 반면선생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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