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비건 도전 중입니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20-01-16 10: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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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나의 새해 소망 중 하나는 열심히 운동해서 복근을 만들고 올해 안에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다. 하루게 다르게 빠져가는 머리와 늘어가는 주름살, 즉 늙음에 대한 저항심리 때문인지 몸 만들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다른 건 막을 수 없어도 몸은 근력운동으로 노화를 조금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도 하고 하루에 예닐곱 번 강박적으로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보통 근육생성에 필수라는 단백질 식품이다. 주로 닭가슴살, 달걀, 우유 같은 동물성 음식이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영 불편하다. 몸무게가 2개월 만에 6킬로그램이나 불었고 몸을 더 크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무거운 중량의 운동으로 관절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더구나 소화기관에 부담스러운 고기, 유제품을 많이 먹었더니 항상 속이 더부룩하고 잠도 잘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가기가 천근만근이다. 


평소 환경을 생각한답시고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데 막상 몸 만들기라는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공장식 축산과 산림파괴로 탄생한 제품들을 대량으로 먹어치우는 내 모습이 흡사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


몸을 더 크게, 중량을 더 무겁게 들고 싶은 욕심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채식하면서 몸을 만들 순 없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건 운동선수가 제법 있다. 심지어 몸도 아주 좋다. 곡물과 콩에도 단백질이 충분히 있고 채소나 과일에도 미량이나마 포함돼 있단다. 하지만 우리는 축산업과 낙농업계, 그리고 단백질 보충제 산업의 마케팅과 거대한 로비로 인한 엉터리 논문에 농락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경계했지만 나도 어김없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채식하면서 운동하는 것이다. 집에 남은 닭가슴살 통조림과 참치 통조림을 일단 개에게 줬다. 운동 후 꾸역꾸역 먹던, 퍽퍽하고 비리고 맛없는 닭가슴살 대신 두부를 먹었다. 우유 대신 두유를 먹었고 흰쌀밥과 정제 밀가루를 사용한 빵 대신 현미밥과 귀리, 그리고 통곡물빵을 먹거나 바나나나 고구마를 먹었다. 


그랬더니 불과 며칠 만에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화장실 가기가 편해지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던 내가 첫 알람 소리에도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게 됐다. 점심에 몰려오던 잠도 오지 않고 뱃살도 많이 빠졌다. 우려하던 근육 손실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몸무게는 1.5킬로그램 줄었는데 아마 체지방이나 나트륨 때문에 몸에 쌓여 있던 수분이 빠진 듯하다.


기름기가 없으니 그릇은 물로만 헹궈도 충분하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더니 턱선이 살아나고 좀 멋있어졌다며 뜨거운 눈길을 보낸다. 난 애써 아내의 눈길을 피하지만 기분은 은근히 좋다. 이렇게 좋은데 왜 이제야 시작했는지 아쉽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주일도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이런 내 비건 도전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아내는 이미 사 놓은 닭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닭을 굽는다. 나는 안 먹겠다고 했지만, 올리브유를 두르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닭을 보니 군침이 돈다. 닭은 소보다는 온실가스 배출과 산림파괴에 덜 나쁘다고 말하고 몇 점 집어먹는다. 그 후로도 아내는 닭도리탕이나 고기가 들어간 카레 등을 요리하며 진짜 안 먹을 거냐고 나를 유혹한다. 아마 내가 금방 포기하고 다시 고기를 먹을 줄 생각한 모양이다.


볼일 때문에 찾아간 지인 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얻어먹었는데 오리고기를 내어준다. 음식을 대접해준 지인에게 미안해서 채식 중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이내 오리고기는 불포화 지방산이라 가끔 먹어줘야 한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다시 고기를 먹는다. 내 뛰어난 자기 합리화 태도가 이럴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것 말고도 비건을 실천하기엔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본가에서는 어머니가 항상 멸치로 육수를 만들고 생선이나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꼭 하나는 있다. 출근하고 나서도 점심을 주로 근처 식당에서 먹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채식 식당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처음엔 도시락을 갖고 다녔는데 그마저도 며칠 지나고 나니 귀찮아서 포기했다. 그렇게 채식 이후로 성공한 날보다 실패한 날들이 더 많아진다.


정말 큰 결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비건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채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상황이 이렇다면 주로 채식을 선호하지만 가끔은 육식도 하는 채식 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곡물만 먹는 완전 채식은 어렵고 힘든 길이며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영원히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계속 도전할 것이다. 주위에서 비건이면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먹으면 안 되지 않냐며 비아냥거리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나는 꾸준히 시도할 것이며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을 때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어쨌든 난 비건 도전 중입니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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