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행복한 마을은 물 건너갔다

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19-12-11 10:37:14
  • -
  • +
  • 인쇄
귀농귀산촌 통신

내가 이사한 2004년은 우리 마을이 강원도형 마을 만들기 사업인 ‘새농촌건설운동 우수마을’에 선정된 해다. 일종의 ‘새마을 운동’인데 마을자원 조사, 테마 선정, 선진지 견학 등 주민교육과 마을 경관 꾸미기, 공동 퇴비작업 등을 통해 마을의 의지를 보여주면 심사를 통해 선정된 마을에 5억 원의 상금을 주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매년 진행되는 사업이긴 한데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하는 마을공동체 관련 사업 중에 그때나 지금이나, 정해진 사업비가 아니라 일종의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유일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우리 마을도 그 상금으로 마을 공동 토지를 사고, 그곳에 한옥 펜션과 식당, 연못 등 농촌관광을 위한 기본시설을 설치했다. 게다가 사업 준비과정 중에 마을조사와 경관작업 등 기본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후의 정부 사업을 받기에 굉장히 유리한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주민들이 함께 지역을 활성화시키고자 한 일이라 주민들의 참여도 대단했고 의욕도 높았다. ‘KBS 6시 내 고향’을 필두로 온갖 신문 방송에 빠지지 않고 홍보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농산업 박람회, 여름휴가 박람회 등도 단골이 됐다. 마을엔 늘 축제가 치러졌고, 도시민들과 기업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 마을에 놀러 온 사람들이 주민들의 집에 자고 가면서 이웃사촌을 맺는 일도 많았으며 휴가철에는 정식 펜션 예약보다 인맥을 통한 부탁이 더 많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초창기 도농교류로 유명한 홍성 문당리를 이어,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농촌마을이 이천의 부래미, 단양의 한드미, 화천의 토고미 등 삼미 마을이었는데 이를 따라잡으려 우리도 부단히 노력했다. 


나를 포함해 마을 청년들 6~7명이 화천군에서 시행한 1년 과정의 ‘그린투어 아카데미’를 이수하면서 도농교류의 기초를 공부하고, 수원의 농촌관광대학을 6개월간 매월 오가며 관광, 서비스 등을 학습하기도 하고, 일부는 경희싸이버대학에서 농촌관광을 전공하기도 했다. 전국의 유명한 마을들은 기본이고, 일본 북쪽의 홋카이도부터 규슈 지역까지 다 가 보며 배우려 노력했다. 


지금 어느 마을이나 고민하고 있는 주민 참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 불참한 사람들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등의 네거티브 방법보다 많이 참가한 사람들에게 연말 대동회 때 상품을 주는 등 포지티브 방법을 시행하기도 했고, 가을 축제는 외부 사람들이 즐기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중심이 된 잔치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받아온 중앙 정부 단위의 첫 사업이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이었다. 처음 내가 사업계획을 쓸 때는 핸드폰이나 차량은 맡겨두고 화전민들의 시설에서 마을에서 공급하는 식재료만으로 며칠간 살아보는 일종의 ‘자연인’ 콘셉트였는데, 선정 후에는 컨설팅 업체와 논의해 사업비 2억 원으로 마을 펜션 마당에 대형 물레방아와 떡판과 떡메를 설치하고 펜션을 보강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이렇게 정부가 지원하는 마을사업의 바퀴가 굴러가게 되면 이제 멈추는 것은 물론이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을 자체의 의지와 노력, 자원을 가지고 작은 시도들을 할 때와는 달리, 정부의 자금이 들어와서 사업이 시행되면 외부의 지원이 없이는 꾸려 나갈 수 없는 규모의 구조가 되고 만다. 그래서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도 마을에서는 외부의 사업을 계속 끌어들여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중앙 정부 부서마다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마을사업들을 따오기 위해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의 완성도와 마을 활성화라는 결과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나 논란 없이 그 사업을 무난히 끝내는 거다. 그러다 보니 덩치가 큰 중앙 단위의 사업은 그 전에 여러 사업을 시행한 결과 큰 문제 없는 소위 능력 있는 조용한 마을에 다시 주게 돼 있다. 


이렇게 중앙 정부의 성과 위주의 경쟁적 지역활성화 사업 방식과 지자체의 자기 시군에 사업을 끌어오고 싶어하는 욕심, 마을의 현실 등이 어우러져 큰 바퀴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제부터는 주민이 행복한 마을, 살기 좋은 마을은 물 건너갔다. 나는 나대로 공부하기 싫어서,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귀농했는데 이러려고 귀농했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몇 년을 살았다. 


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