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물결이 만나 일렁이는 나루, 삼랑진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0-01-17 1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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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여전히 적막하고 고요한 삼랑진

한적한 오후다. 일월의 겨울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아 따사로운 날 삼랑진을 찾았다. 밀양강이 낙동강을 만나 큰 물줄기가 된 그 강이 다시 바다를 만나는 곳. 세 곳이 만나 일렁인다는 뜻을 품은 삼랑진은 내겐 늘 고요한 적막 속의 도시다. 낚시를 즐겨 했던 이십대 초반부터 인연이 있었던 삼랑진, 그 나루에 보트를 띄우고 윤슬 일렁이는 강물이 붉게 물들 때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물 위에 떠 있던 시간이 떠오른다. 비닐하우스들이 너른 들판에 엎드려 빛을 받아 반짝이던 기억,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때는 없었던, 강 위의 허공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가 생겼지만 운치는 여전하다. 당시 오래된 삼랑진 철교는 폭이 좁아 차가 교행하기 쉽지 않았다. 저 끝에서 보일 듯 말 듯 오고 있는 차가 있는지 확인한 후, 한참을 기다려 건너편 차가 다 올 때 출발했다. 지금처럼 초, 분을 다투는 시절이었다면 강물 위 다리 한가운데서 후진을 하는 광경을 많이 보았을 테지. 드문드문이지만 여전히 차들이 기다리며, 오고 간다. 

 

▲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건설하였으며 다리 길이 602m, 도로 폭 4.3m 규모다. 1943년 철도로 개통돼 사용하다가 1963년 구조를 보강해 인도, 차도로 사용하고 있다


가지산 터널이 뚫리지 않았던 시절, 굽이굽이 산 휘감아 돌아 다시 거친 마을길을 지나 멀고도 멀게 느끼며 도착했던 원동, 평창이 있던 삼랑진까지 주말이면 차가 밀려 대여섯 시간은 훌쩍 넘겼다. 이제 흙도 밟지 않고 잘 뚫린 터널과 도로를 달려 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됐지만, 여전히 적막하고 고요하다. 너른 평야와 끝없이 펼쳐지는 강, 그 뒤를 드리운 낮은 산세, 광활한 품속이라 더 그리 느꼈던 걸까. 교통의 요충지로 발달했음에도 삼랑진은 예전만큼 팽창돼 붐비지는 않는다.

 

▲ 1923년에 설치한 급수탑으로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던 철도 시설물이다. 지금은 등록문화재 51호로 지정돼 한국철도공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 삼랑진이 고향인 오규원 시인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 후배의 손바닥에 힘없이 써 내려간 마지막 시의 첫 연이었던 ‘한적한 오후다’라는 그 여섯 글자는 왠지 내가 삼랑진을 갈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됐다. 이어지는 ‘불타는 오후다’의 다음 연은 더이상 잃을 것 없이 깡그리 소진시키고 사라진 시인의 열정적이었던 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돈이 길에 널려 있었다는, 한때는 날리던 옛 명성의 삼랑진 젊은 모습 같기도 하다. 


바다와 닿는 수로가 있고 그곳에 철도가 들어서면서 낙동강 권역 교통의 요충지였던 삼랑진에는 일본의 병참로로 이용하기 위한 군용철도가 놓였다. 마산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 돼 경부선과 경전선, 하루에도 꽤 많은 기차가 이곳을 지난다. 잠시 머무는 기차도 있고, 서지 않는 기차도 있다. 백 년 전쯤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지금은 쓰지 않는 급수탑이 한 켠에 담쟁이 줄기에 감겨 서 있지 않았다면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역사로 짐작할 만큼 깨끗한 삼랑진역이다. 이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수문장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급수탑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한국철도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명절 밑 파마 수건 두른 할머니들
굽은 등에 모처럼 설렘이 묻어난다


시간의 여행이라는 말이 모자람 없는 과거의 모습은 역을 나서자마자 이어진다. 한적한 이곳의 산책을 좋아해 몇 번을 찾았지만 이 날은 처음 본 삼랑진의 장날이다. 4, 9일장이다. 사람 만나기 힘들었던 상가들의 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다. 비릿한 고기를 삶는 냄새가 세월의 더께를 입고 새까맣게 그을음이 입혀진 가마솥에서 연기와 함께 솟아나고, 옆집 방앗간의 깨를 덖어내는 손길도 분주하다. 명절 밑이라 그런지 머리에 파마 수건을 두르고 미장원을 들락거리는 할머니들의 굽은 등에 모처럼 설렘이 묻어난다. 삼랑진의 유명한 딸기들이 제철을 맞아 봉긋하게 붉은 탑을 세우고 나란히 줄지어 앉은 모습처럼.

 

▲ 4일 9일 열리는 오일장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삼랑창은 현풍, 밀양, 김해, 양산 등지의 물자와 곡식들이 집결되는 최대 집산처였지만 지금은 인근 평창과 수산, 밀양 내 지역 물자들이 사고 팔리는 전통시장의 모습이다.


소규모 읍의 장날치고는 꽤 규모가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 모처럼 활기찬 장터가 반갑다. 교통의 요충지였던 삼랑진은 부산이 멀지 않아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 상공업과 철도에 근무하던 일본인들의 그때 그 집들과 거리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몇몇 곳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거리가 대부분 그렇듯 사람이 떠난 낡고 부스러진 건물도 있고, 조금은 덕지덕지 수리해 살고 있는 집도 있다.
역 앞으로 펼쳐진 도로를 따라 북서쪽 구릉 지역의 마을로 들어섰다. 이번 방문의 목적인 철도관사마을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 삼랑진에는 1910년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삼랑진에만 일본인이 600여 명 170호 남짓 살았다고 한다. 철도관사마을은 일본이 철도를 관리하면서부터인 1917년부터 꽤 오랜 시간 조성됐는데 이곳은 전체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철도관사촌으로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한다. 

 

▲ 마을에 있는 공동 우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마을 끝 가장 높은 곳부터 살펴보면 지금은 원불교 교당이 눈에 띄는데 그곳은 신사가 있던 곳이다. 당시 일본이 철도를 통합 운영하는 기관이었던 총독부 철도국에서는 철도원 사택을 전국에 지어 관리하게 되는데 그 건축양식이 일률적이다. 높은 곳 7등급 관사부터 아래로 지어 내려오면서 낮은 바깥쪽을 8등 관사가 둘러싸고 있는 형식이다. 사이사이 골목길은 넓고 찾기 쉽도록 일관된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분 나무껍질로 벽을 두른 일반 형태의 적산가옥 모습이 그대로고, 일본식 돌 축대로 높이 쌓아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지어진 몇몇 가옥도 있다. 아마도 놓은 직급의 간부들이 살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다 떠나고 일반인들이 불하받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세군데 모서리를 석축으로 쌓아 올려 단차를 이용해 시야와 안전을 확보한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다.


통째로 헐린 집,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로 문이 잠긴 집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군데군데 마을 공터에는 함께 사용했다는 우물 여러 곳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우물 위에 누군가 재활용으로 내어놓은 이불이 놓여있다. 붉은 홑청의 목화솜 이불이 쇠락하는, 늙어가는 마을의 모습 같아 왠지 서글픈 마음도 든다.

세 갈래 시간이 만나 흐르는 물결

삼랑진 철도관사촌은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주최하는 ‘이것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에서 지난해 문화재청장상을 받았다. 이미 마을 입구 쪽 철도 병원은 헐려서 대형마트가 들어서 모양새가 온전하지 못하게 됐더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원형을 보존시켜야 할 관심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궁리하고 힘과 품을 팔아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지켜질까. 보존해야 하니 고치지 말고 그대로 살라고 하는 것은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에겐 폭력이나 다름없다.


오래 전 어느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글과 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바닷가 모래사막이었는데 하얗고 눈부신 모래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기에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웠는데 자연 환경적 사료로 그곳을 보존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글 말미에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한 번씩 와서 보는 이곳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중요한 곳일지 몰라도 매일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숨쉬기조차 힘들고, 외출은커녕 밥을 먹을 때조차 입속이 모래로 서걱거리니 좀 살게 해달라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감동하고 위로받는 여행지의 자연이나 오래된 문화재를 보면 항상 아쉬움과 염려가 앞선다. 다시 찾았을 때 많이 변해있어 낯설까 봐, 어울리지 않는 분칠을 하고 앉아 있을까 봐. 내가 누리는 이 정서를 이어나가고, 다음 세대 후손들에게 어떻게 보존해서 물려주게 할 것인가, 이번 삼랑진 방문을 계기로 아주 조그마한 기부를 시작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해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단체다. 

 

▲ 구한말인 1905년 5월 25일 준공됐다. 경전선 개통과 함께 삼랑진~마산포를 연결하는 철도의 일부로 1962년 말까지 이용됐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의 의미와 ‘새로운 과거’라는 말의 뜻은 다르지 않다. 퇴색돼 낡고 늙은 과거에는 그것만이 품을 수 있는 시간 속에 서사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살았던,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나갈 사람과 사물이 있다. 세 갈래 시간이 만나 흐르는 물결, 열대의 물속에서 서로 엉켜 지탱하는 맹글로브 나무의 뿌리처럼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진다. 미래는 나의, 우리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는 과거에서부터 시작한다. 


돌아 나서는 길, 강가에 새로 지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낙동강의 근사한 일몰 풍경을 분명 아는 사람이다. 직접 커피를 로스팅해서 내려주는 솜씨 좋은 바리스타가 있다는 그곳인가 보다. 오가는 사람도 없이 한적한 이 시골 읍내까지 들어온 그이는 삼랑진과 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제법 찬 모습에 괜한 안도감이 인다. 깊고 진한 커피 향 위로, 주홍빛 노을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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