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미 없음’에 대하여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19-06-13 10: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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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부산현대미술관 <자연, 생명, 인간>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김원정 작가의 ‘필연적 관계’, ‘잡초 그 ‘의미 없음’에 대하여’입니다.


‘어? 화분이 아니라 밥그릇인데?’ 밥그릇, 국그릇에 심긴 말라버린 누런 풀들이 줄을 지어 놓여있습니다. ‘이건 깨…인가?’ 알고 있는 식물 이름들을 떠올려 보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냥 다 ‘풀’이지요. 누렇게 말라버린 풀들의 행렬을 지나니 감탄사가 나오는 화려한 작품이 있습니다. 밥상 위를 가득 채운 그릇 속에는 여러 가지 생김새의 초록색 풀들이 심겨 있고, 이 밥상들이 쌓여 산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옮기니 몇 개의 화분들 뒤로 인터뷰 영상이 상영 중입니다. “그건 함박꽃이야, 아주 귀한 꽃이지.” “이건 미나리, 저건 서양 민들레…” 내 눈에는 그냥 ‘풀’인데 영상 속 인터뷰 주인공은 식물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름을 모르는 식물이 있습니다. “그건 그냥 잡초지, 잡초.”


“그럼, 잡초는 값으로 따지면 얼마쯤 할까요?” “그걸 어떻게 값을 매겨? 그건 가치 없지.” “잡초와 잡초가 아닌 것은 어떻게 구별하세요?” “내가 고추를 심었는데 고추 말고 다른 것이 자라면, 그게 잡초지.” “잡초의 의미? 의미 없지.”


전시장을 나오며 동행한 친구와 생각을 나눠봅니다. “아! 여기 전시된 풀들은 잡초였구나!” “의미 없다던 저 잡초가 암 치료에 효능이라도 있다고 하면, 말이 달라지겠지?”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당연하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이 그런 거였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통해 찾아보았습니다. ‘필연적 관계’에서 하나의 그릇은 개인을, 그릇들이 모인 밥상은 한 가정을, 이 밥상들이 모여 합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 전체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말라버린 풀과 새로 자라나는 풀의 대조는 생과 사의 순환 고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네요.


그리고 ‘잡초, 그 ‘의미 없음’에 대하여’에 전시된 화분들은 작가가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 안팎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 잡초 화분을 값을 쳐서 구입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을 통해 “사실 잡초라는 풀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잡초’라 뭉뚱그려 명명되지만 개별적인 개체로서 존재하는 다양한 식물들을 수집하고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서 ‘의미 있음’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미술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나의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몇 주 전 사회시간,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울산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자, 울산의 문화유산이 이렇게 많아요. 그럼 어떤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한번 살펴볼까요?” 울산 울주군의 문화재가 76건이 검색되었습니다. 국보, 보물, 사적… 등록문화재까지 구분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부터 살펴보기로 해요.” 당연히 우선순위 첫 번째는 국보였습니다. 국보가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문화재이기 때문이었죠. 사실 그렇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이미 그 가치의 우선순위가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기억과 기록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국보처럼 유명한 인사들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이름 붙여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 전시처럼, 울산에 관한 지금까지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연구를 기대합니다. 그런 공부를 꾸준히 해보자는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잡초’라고 뭉뚱그려 명명되지만 개별적인 개체로서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관한 기억을 수집하고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의미 있음’을 드러낸다면 멋진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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