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니체’ 김남호 교수와 함께…<비극의 탄생> 1편

최미선 시민 / 기사승인 : 2020-07-31 10: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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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TV 지상중계

루나와 리브의 ‘니체 썰전’

 

Q1. <비극의 탄생>을 쓴 니체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루나(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이야기해 볼 책은 니체의 첫 번째 저서 <비극의 탄생>이야. 니체가 교수가 된 이후 첫 번째로 낸 책인데, 리브, 28살에 뭐했어?
리브(김남호 울산대 철학과 객원교수): 28살에 독일에서 열심히 공부했지.
루나: 열심히 살았네. 니체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는데,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줘.
리브: 많은 사람이 니체가 25살에 철학과 교수가 됐다고 생각해. 왜냐면 철학자니까. 그러나 니체는 철학과 교수가 된 적이 없어. 25살에 바젤 대학교 문헌학과 교수가 됐어. 니체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어. 니체가 다녔던 슐포르타라고 하는 학교는 라틴어 등 고대 언어를 집중적으로 교육시키는 학교였어.
루나: 고전어 전문학교라고 들었어.
리브: 니체가 그곳에서 재능을 보였어. 니체가 젊은 시절에 리츨이라는 문헌학 교수와 만나게 되는데, 리츨 교수가 니체가 쓴 소논문을 보고 재능을 알아본 거야. 문헌학자로서 재능을 알아본 거지. 고전문헌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헌학자가 갖춰야 할 꼼꼼함을 갖추고 있었어. 바젤 대학의 문헌학과 자리에 공석이 생겼는데, 리츨 교수가 ‘듣보잡’ 니체를 거기다가 꽂아 넣었어.
루나: 박사 논문이 나오기 전에 꽂았다고 들었어.
리브: 그렇지, 독일에서는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교수 임용 논문을 또 써야 해.
루나: 그게 없이 교수가 됐다는 것은 말 그대로 꽂은 거네.
리브: 그렇지 교수자격 논문 없이 교수직에 올랐다는 것은 리츨 교수의 강한 영향력으로 넣었다는 거지. 독일 사회에서는 교수가 갖는 파워가 엄청 커. 니체 아버지가 목사였는데, 니체가 5살 때 돌아가셨고, 미망인 연금으로 어머니, 여동생, 니체 이렇게 3식구가 살고 있었어. 굉장히 경제적으로 어려웠지. 당시 어머니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니체가 교수가 된 것을 굉장히 기뻐해.
루나: 돈 때문에?
리브: 돈도 있고…
루나: 명예도 있고!
리브: 그런데 이 일은 니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생 계획에 없었던 일이야. 자신은 꿈에도 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교수가 될 생각도 없었어. 깜짝 교수가 되니까 자신도 당황했어. 교수가 된다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것이야. 글 쓰는 것도 훈련이 돼야 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훈련이 돼야 해. 또 문헌학이 무엇인지, 내가 문헌학자로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목표의식 같은 것이 있는 상태에서 교수가 됐어야 했어.
루나: 준비가 없이 됐군.
리브: 그렇지. 교수가 될 준비 없이 교수가 된 거야. 나중에라도 이런 자질을 갖춰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큰 부담이 돼서 어려운 삶을 살 수도 있어. 니체의 인생은 결과적으로 후자가 됐지. 문헌학자로서 실패의 길로 나아가게 되지.

Q2. 니체와 칸트의 관계가 궁금하다.

루나: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쇼펜하우어는 이중적 세계관이잖아. 현상과 의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 줘.
리브: 니체가 문헌학 교수가 된 다음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심취한 것으로 보여.
루나: 아니! 대학 시절에 고서점에 들렀다가!
리브: 접할 때는 그랬지. 그런데 깊이 파고든 것은 교수가 된 이후라고.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얘기하려면 먼저 칸트를 이야기해야 해.
루나: 칸트! 어렵다.
리브: 칸트의 인식론을 간단히 설명할게. 칸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과 알 수 없는 영역에 금을 긋는 작업을 시도하지.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은 과학의 탐구영역이야.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은 형이상학의 탐구영역이고. 알 수 있는 영역을 현상계라고 해. 지금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야. 현상계는 질서가 잡혀있는 세상이야. 이러한 사물이 이러한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A가 발생하면 B가 발생하고…
루나: 시간과 공간과 인과율이 지배하는 이 세상이 현상계라는 거지?
리브: 그렇지.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래. 우리에게 인식의 틀이 있어. 인식의 틀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질서 잡힌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루나: 우리가 인간이기에 인간의 틀을 가지고 바라본 것이잖아. 개미라면 개미의 틀로 바라본다는 것이네.
리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현상밖에 알 수 없어. 그러면 현상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칸트는 사물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지. 사물 그 자체는 인간의 인식 틀 너머에 있어서 우리는 알 수가 없어.
루나: 인간이 인간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사물 그 자체라는 거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세계에 참여하고 있구나’라는 인간의 자존감을 느꼈어. 사물 그 자체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조망한다는 것이지.

Q3. 이제 쇼펜하우어 이야기 좀 해 줘.

리브: 쇼펜하우어는 이 칸트의 사상을 접한 다음에 당시 유행하고 있던 베단타 철학을 결합시켜. 칸트는 현상계 배후에 사물 그 자체가 있다고 봤지만,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있다고 봤어. 의지가 현상 배후에 있어서 현상을 이러한 방식으로 생성 소멸하고 있다고 봤지. 의지는 근원적 힘으로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어. 우리 현상계 너머에 있으니까.
루나: 의지가 사물 그 자체와 유사하잖아.
리브: 그렇지, 사물 그 자체에다 의지를 넣은 거지. 이게 의미하는 건 인간에게 의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야. 그런데 의지의 특징은 맹목적이야. 그냥 일어나는 거지. 불길이 계속해서 나오거든. 의지가 발현된 결과로 리브와 루나라는 개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개체는 수많은 욕망과 욕구와 야욕에 시달리게 돼.
루나: 그러니까 삶은 전쟁터가 아니겠어?
리브: 그렇지. 루나도 욕심이 없지 않잖아?
루나: 나! 욕심 엄청 많아.
리브: 나도 욕심이 있거든. 사람이라고 한다면 의지가 계속해서 불길처럼 올라오는 거야. 욕구와 충동은 만족을 몰라.
루나: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어?
리브: 여기서 벗어나자는 거지.
루나: 도망가자?
리브: 도망은 좀 그렇고,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어떻게 삶을 구현할 수 있을까? 맹목적인 충동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피해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

Q4. 이제 니체 이야기를 해 줘.

리브: 니체는 바로 거기에 불만을 갖고 있었어.
루나: 구원이나 회피 도망을 싫어했다는 거지?
리브: 니체는 불길처럼 솟아오는 힘을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려는 쇼펜하우어 생각에 반대해서 끌어안으려고 했어.
루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그런 측면을 데카당이라고 했지?
리브: 염세주의라고 하지. 삶에 대한 도피로 본 것이지.
루나: <비극의 탄생>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질문들이야. 이 책 중에 ‘강함의 염세주의는 없을까?’라고 한 것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 대한 반격 혹은 극복이라고 생각해.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세계의 고통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지?
리브: 그렇지.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결과로서 우리 안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욕구, 충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대표적인 것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야. 니체는 끓어오르는 이 힘을 왜 외면하느냐고 묻는 거지. 그것을 끌어안아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삶을 더 고차원적으로 승화시키는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것을 끌어안느냐 거리를 두느냐의 차이야. 니체는 그것을 끌어안아서 내 삶을 고양시키고 더 나은 삶으로 끌어나가는 방식의 길을 걷지.

Q5.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에 대해 말해 줘.

루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구도가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구도로 나타나. 그런데 미묘한 차이가 있어.
리브: 차이는 니체의 중, 후기 철학에 계속 나오는데, 이원론을 반대하는 거지. 이원론은 두 개로 나누는 것이야. 인간도 신체와 영혼으로, 세상도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나누지. 니체는 이것을 반대해. 쇼펜하우어는 물자체에 해당하는 의지와 물자체가 발현하는 현상으로 나누잖아. 니체는 이런 식의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지.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이 두 개를 물자체에 존재하는 어떤 것, 인간의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충동이라고 본 것이야.
루나: 칼 융의 무의식과 의식의 구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
리브: 그렇긴 하네. 충동이라는 것은 내 안의 의식 너머에 있으면서 의식 표면으로 올라오는 거니까 무의식의 영역에 있다고도 볼 수 있어.

(<비극의 탄생> 2편에 계속)

 

 


정리=최미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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