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 기사승인 : 2020-06-18 10: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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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명의 고전 성독

<다多all듣영어> 논란(4)

일제식민지 교육을 겪지 않고 해방 후 첫 우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영어 공부는 독본 위주로 느긋했다. 영어 교과서에 좋은 글이 많이 실려 있고, 부독본으로 나온 <이름난 이야기 50편>은 더욱 흥미로워 삶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탓에 영문본을 뜯어읽으며 시공을 초월하는 해방감을 맛보고 큰 꿈을 키웠다.


그 다음 세대인 자식들은 영어를 잘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투쟁이었다. 토플과 토익 같은 객관식 택일의 시험을 보아 점수를 올리는 것이 영어공부였다. 이유는 묻지 말고, 좋고 싫은 것도 가리지 않고, 책에 있는 대로 암기해야 하는 각박한 시대가 됐다. 경제 성장 때문에 정신 성장은 멈춰야 했다.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별들의 전쟁> 같은 것을 영화나 비디오로 보면서 영어가 고전의 세계로 안내하는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다음 세대인 손자들은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는 자랑스러운 시대를 살지만 영어에 더욱 가혹하게 시달린다. 조기 영어교육으로 빚어지는 각종 사태는 아이들의 삶을 암울하게 한다. 영어 발음을 위한 혀 수술, 영어로만 말하는 유치원, 원어민과 함께 하는 회화교육, 영어를 익히기 위해 혼자 유학, 가족이 떨어지는 이산가족 유학, 아예 이민을 감행하기도 한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어떤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아이들이 힘들어한다.


부작용이 심각해 사회문제가 되고, 의식의 변화와 학습기기 발달로 영어 공부의 대전환이 필요한 이때 울산교육청은 옹색하기 짝이 없는 방안을 내놓으며 혁신 영어교육이라 한다. 공교육 안에서 多 들을 시간이 없고, all 들을 필요가 없는데 <다多all듣영어>라니! 영어에 관심이 많은 어떤 가정에서 부모가 작심하고 특별하게 돌보면 영어에 능통한 자녀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공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가정과 연계해 계속 듣게 한다고 하나 그렇게 돌볼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채질할 뿐이다.


억만재 柏谷(백곡) 金得臣(김득신 1604~1684년) 선생은 어려서 노둔했다. 억만 번을 읽어도 암송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김득신은 초인적인 노력으로 대기만성해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되고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간다. 그가 쓴 독수기를 보면 이것을 보편화하기는 어려우리라. 울산교육청의 <다多all듣영어>와 김득신의 ‘억만 번’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가 오버랩된다.

古文三十六首讀數記(고문삼십륙수독수기)라 : 고문 36수 읽은 횟수를 기록한 것이라

讀獲麟解等一萬三千番(독획린해등일만삼천번)하고 : <획린해> 등을 1만3000번 읽었고
讀鰐魚文一萬四千番(독악어문일만사천번)하고 : <악어문>을 1만4000번 읽었고
讀鄭尙書序等一萬三千番(독정상서서등일만삼천번)하고 : <정상서서> 등을 1만3000번 읽었고
중략
讀龍說二萬番(독룡설이만번)하고 : <용설>을 2만 번 읽었고
讀伯夷傳一億一萬一千番(독백이전일억일만일천번)하고 : <백이전>을 11만1000번 읽었고(여기서 一億(일억)은 十萬(십만)이다)
讀老子傳二萬番(독로자전이만번)하고 : <노자전>을 2만 번 읽었고
讀分王二萬番(독분왕이만번)하고 : <분왕>을 2만 번 읽었고
중략
讀凌虛臺記二萬五百番(독릉허대기이만오백번)하고 : <능허대기>를 2만500번 읽었고
讀鬼神章一萬八千番(독귀신장일만팔천번)하고 : <귀신장>을 1만8000번 읽었고
讀補亡章二萬番(독보망장이만번)하고 : <보망장>을 2만 번 읽었고
중략
讀祭歐陽文一萬八千番(독제구양문일만팔천번)하고 : <제구양문>을 1만8000번 읽었고
讀中庸序二萬番(독중용서이만번)하고 : <중용서>를 2만 번 읽고
百里奚章一萬五千番(백리해장일만오천번)하여 : <백리해장>을 1만5000번 읽어
自甲戌至庚戌而其間莊子馬史班史學庸非不多讀(자갑술지경술이기간장자,마사,반사,학용,비불다독)하나 : 갑술년에서 경술년까지 그 사이에 장자, 마사, 반사, 대학중용 등을 다독하지 않음이 없으나
不至於萬則不載讀數記爾(불지어만즉부재독수기이)라 : 읽은 횟수가 1만 번을 넘지 않는 것은 독수기에 올리지도 않았노라.
若後之子孫(약후지자손)이 : 만약 후손들이
觀余讀數記(관여독수기)하면 : 내가 쓴 독수기를 본다면
則知余之不惰窳于讀(즉지여지불타유우독)하리라 : 내가 독서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라. (惰 게으를 타, 窳 게으를 유)
庚戌季夏(경술계하)에 : 경술년 늦여름에
柏谷老叟(백곡로수)는 : 백곡 늙은이가
題槐州醉默堂(제괴주취묵당)하노라 : 괴주 취묵당에서 쓰노라.
<柏谷先祖文集冊五(백곡선조문집책오)>,記(기),古文三十六首讀數記(고문삼십육수독수기)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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