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역사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19-05-08 10: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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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1. 그린 북(Green Book)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강렬한 영화는 단연 <그린 북(Green Book)>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 1월에 개봉하기도 했는데, 각종 시상식에 후보자로 추천되어 이미 유명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미국 내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그린 북’일까요?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미국 사람들은 녹색을 개척의 선구자란 의미로 이해한다고도 하네요), 이 영화에서는 흑인을 위한 여행설명서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영화 내용을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주인공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연주자입니다. 물론 돈도 아주 많지요. 그의 운전기사로 고용된 토니 발레롱가는 허풍과 주먹을 무기로 살아가는 거리의 남자입니다. 그에게는 돈 대신 사랑으로 가득한 ‘Sweet home’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천재 피아니스트는 흑인이고, 운전기사는 백인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미국 남부로 연주 여행을 떠나며 겪게 되는 인종차별,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법으로 규제되는 강력한 차별까지. 흰 피부의 사람들은 절대로 모를 그런 감정을 주인공과 함께 느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조금 거창하지만 ‘차별의 역사’라고나 할까요?

2. 차별을 겪는 사람들


인권의 기본은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차이’는 서로 다른 것을, ‘차별’은 맞고 틀림을 의미하는데 생명이라는 것은 맞고 틀릴 수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지요. 지겨울 정도로 자주 들어온 말이지만, 차별을 보기에 앞서 언제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 속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분제도’입니다. 태어난 순간 자신의 거취가 결정되는 것으로, 평생 벗어나기가 불가능할뿐더러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아주 지독한 차별입니다. 요즘 말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는 거지요. 출생에 따라 집도, 옷도, 직업도 정해지는 것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조선 시대까지 엄연히 존재하는 제도였습니다.


‘종교 차별’과 ‘남녀차별’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서학으로 처음 들어왔던 천주교는 사상과 풍습이 유교 윤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00년이나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 중에는 하층 양반과 부녀자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의 각종 ‘차별’들로 불편함을 겪었던 이들에게 천주교는 해방과도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도 무수히 많습니다. 관직에 나갈 수도 없었을뿐더러 남성들의 소유개념으로 취급되었지요. 양성평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이슈인데, 꽤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차별이 있었을까요? 교육에서의 차별은 물론이거니와 임금에서의 차별도 있었고, 하다못해 범죄를 저질러도 일본인들과는 다른 형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이미 정리된 그리고 지금 연구 중인 각종 사료로 쉽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로도 이미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국민으로서 겪어야 할 설움은 셀 수 없이 많았겠지요.


전후 한국 사회의 차별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대한독립과 함께 차별의 주체였던 일본인들이 물러났지만, 한국전쟁이 낳은 이데올로기 분쟁으로 전후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차별이 생겨났습니다. 이념에 의한 차별이지요. 조선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차별받았습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지요. 역사 교과서에 실리기는커녕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순한 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 차별은 70년 가까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행 중으로 세대 간 불화, 지역 간 불화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3. 차별을 만드는 사람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라는 용어로 계급문제를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구별을 만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하는데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함으로써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로의 구별이 아니라 ‘아래’로의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더 아래’를 만들어 구별함으로써 스스로 ‘위’가 되려 하므로 결국 스스로 ‘차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이 ‘위’이고 무엇이 ‘아래’일까요? ‘위’가 옳고, ‘아래’가 틀린 것일까요?

4. 다시, 그린 북(Green Book)


영화로 돌아가 봅니다.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는 사실 뉴욕에만 머물러도 충분히 인정받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인종차별이 더 심해지는 남부로의 연주 여행을 떠나는 걸까요? 수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녹색을 개척의 선구자라고 이해한다고 말씀드렸나요? 미국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녹색표지의 책을 전달받는데, 그곳에는 1200개의 관직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임명할 수 있는 관직의 숫자입니다. 다시 말해 그린북을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셜리 박사가 하고 싶었던 일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5. 비교하지 않는 삶, 비교당하지 않는 삶.


이런 이야기를 하고 보니, 또 궁금해집니다. 이토록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스스로 차별받지 않고 또 차별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갔을까요?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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