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운동의 진주, 난봉가와 애수의 소야곡 남인수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 기사승인 : 2020-08-19 10: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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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여행
▲ 진주 진양호에 있는 남인수 동상 ⓒ진주시청

 

진주라 천리길, 한양에서 남도의 복판인 진주까지 천리 길… <목포의 눈물>과 더불어 <진주라 천리길> 가요는 해방 전 최고의 히트곡이었습니다. 다만 작사, 작곡, 가수 모두 월북하는 바람에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중가요의 굵은 획을 그은 가히 가요황제라고 할 만한 남인수를 배출한 진주는 예향으로 이름 높습니다. 그래서, 개천 예술제와 진주 검무를 비롯해 무형문화재가 많습니다.


진주성과 촉석루 논개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진주에는 형평운동이 있었습니다. 백정들의 신분 철폐 운동인 형평운동이 1923년 진주에서 처음 일어나 남강변에 형평운동기념탑이 있습니다. 진주 형평운동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됐지만 실질적으로 잔존하고 있던 일상생활에서의 차별 대우와 심지어 학교와 종교 단체에서의 차별 철폐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흑인차별과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비슷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100여 년 전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백정들은 기와집에서 살거나 비단옷을 입을 수 없었고, 외출할 때는 상투를 틀지 않은 채 ‘패랭이’를 써야 했으며, 장례 때도 상여를 사용할 수 없었고 상민들과 떨어져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학교와 교회에서마저 백정과 어울릴 수 없다고 거부해 백정의 자식이 학교발전기금을 내고 전입하려고 할 때 집단으로 등교 거부를 하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서 예배 볼 수 없다고 신도들이 예배를 거부해 선교사가 예배 형태를 바꿀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일제는 조선의 봉건적 질서를 온존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민적(民籍)에 올릴 때 이름 앞에 ‘붉은 점’ 등으로 표시하거나 도한(屠漢)으로 기재했을 뿐만 아니라 입학원서나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에도 반드시 신분을 표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백정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후예라는 학설로 보아 외모가 조금 다르다고 배척하는 인종차별이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회개혁 운동을 백정과 더불어 강상호를 비롯한 진보적인 양반들이 주도한 점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진보성이 엿보입니다. 또한 반형평 운동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학 혁명을 진압한 양반처럼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누리려는 인간사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로 시작하는 구전가요 <진주난봉가>가 있습니다. 가난한 시집에서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를 하나 남편인 진주낭군은 기생을 첩으로 데려와 아내를 외면하자 여인은 목을 매 죽고, 죽은 아내를 보고서야 진주낭군이 후회하는 내용입니다. 제목에 ‘진주’라는 지명이 들어 있지만, 진주와 상관없이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는 민요입니다. 진주가 물산이 모이는 남도의 중심지라 이런 제목이 생겼나봅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진주 출신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입니다. 소야곡은 세레나데(serenade)의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감격시대>, <가거라 삼팔선>, <낙화유수> 등 숱한 가요를 부른 백 년에 한 명 나올 미성의 목소리 남인수는 진주가 낳은 불세출의 미남 가수입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일제 말기에 남인수는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지원병 제도를 지지하는 <그대와 나, 이천오백만 감격, 혈서 지원>등의 군국 가요를 부르고, 1944년 미국과 영국 격멸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부민관에서 열린 ‘성난 아세아’에 출연하는 등 친일행위에 가담해 친일인명사전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진양호 한 쪽에 기념비와 동상이 있는데 한적한 곳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팬클럽에서는 넓고 탁 트인 곳으로 옮기자고 하는데 히트곡과 친일가요를 같은 비중으로 다뤄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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