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 기사승인 : 2020-05-28 10: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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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명의 고전 성독

초등영어교육의 혁신 울산형초등영어교육 ‘다듣영어’를 소개하는 울산교육감의 말을 들어보면, 영어교육의 목적은 의사소통이고, 방법은 듣기 위주다. 이런 문제제기의 근거가 ‘그동안 영어교육은 10년을 배워도 말 한 마디 못하는 그런 교육’이고 ‘핀란드라는 나라는 듣기 위주로 해서 의사소통을 잘하는 나라가 됐다’다. 근거도 목적도 방법도 너무나 상식인데 혁신이라니 오히려 놀랍다.


누구랑 어떤 내용으로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말인가? 모국어가 영어와 비슷하거나 문명권이 동일한 나라에서 말하기 듣기 위주로 공부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하면 될까?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서 읽고 쓰기는 가능하도록 해온 기존의 우리 공부법은 무의미한가? 사교육 없이 학교 영어교육만으로 영어회화의 유창성을 기를 수 있을까? 영어교육은 세계사적 과제인데 너무 안이한 해결책을 내놓아 과연 정책 결정에 앞서서 심도 깊은 연구를 했을까? 


약 20년 전에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을 가진 소설가가 나타났다. 찬반 논란이 일어나고 관련 저술이 나온 것을 다시 참고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아래의 책들을 읽고 내실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애써 만든 ‘다듣영어’는 단위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학교 현장 영어교사의 안목과 능력을 믿어야 한다. 교육청 단위에서 영어 공부 방법을 획일화해 주도하면, 영어교사는 혼란에 빠지고, 아직 모국어가 덜 정착된 애꿎은 초등학생들은 영어제국주의의 제단에 희생물이 될 수 있다.
 


복거일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논란을 촉발해, 김영명은 우리 말글로 우리 학문을 하자고, 영어교육 전문 학자인 한학성은 바람직한 영어교육으로, 정시호는 세계의 언어정책을 살피며 반론과 대안을 제시하고, 조동일은 외국물을 먹지 않은 순수 국산학자의 자리에서 경험과 식견과 지식으로 다른 외국 유학 학자들이 하지 못한 말을 해서 깊고 넓은 토론을 유도하며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성호 이익 선생은 ‘불치하문’에서 임금은 군자의 태도를 본받아 정사를 펼치는데, 병자의 간절함과 길 잃은 나그네의 막막한 심정을 헤아리듯 해야 한다고 했다. 울산교육청도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깊이 이해해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최상의 방법이 무엇인지 애타게 찾고 있는 학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려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모국어를 열심히 익혀서 창조력과 사리 판단력을 기르는 것은 천부인권이다. 기능직이 아니라 결정권자인 교육감이 나서서 특정 언어를 열심히 듣자는 정책을 홍보하는 것은 이것을 침해하는 심각한 사태다.

불치하문(不耻下問)이라

故君子盡心殫力(고군자진심탄력)하고 :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정성을 쏟고 힘을 다 하고(殫 다할 탄)
誠求博訪(성구박방)하여 : 진실로 널리 찾아 구해
冀得其本旨(기득기본지)하고 : 성인의 본뜻을 깨달으려고,
集衆說而揀别之(집중설이간별지)하되 : 여러 사람의 말을 모아 가리되
雖諢言妄談(수원언망담)이라도 : 비록 농담과 허망한 말일지라도(諢 농담 원)
莫不詳審(막불상심)하고 : 자세히 살피지 않은 것이 없고,
苟使乖舛倍理(구사괴천배리)라도 : 진실로 괴상하고 잘못되어 이치에 어긋난 말이라도 (舛 어그러질 천)
容焉而不罪(용언이불죄)하니 : 용납하여 허물삼지 않으니
此不耻下問之所以為文也(차불치하문지소이위문야)라 : 이것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不耻下問)”는 말이 생기게 된 까닭이다.
如仁主御極(여인주어극)하여 : 비유하면 마치 어진 임금이 처음으로 즉위(卽位)하여
求治之功(구치지공)이 : 잘 다스리기를 구하는 공력이
劇於飢渴(극어기갈)하여 :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참기 어려워
下詔求言(하조구언)하니 : 조서(詔書)를 내리고 직언(直言)을 구하니
論議遝至(논의답지)에 : 사방에서 모여든 여러 의논에(遝 모여들 답)
惟賞其善而不罰其不善也(유상기선이불벌기불선야)라 : 그 중 착한 것은 상주고 착하지 않은 것도 벌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又如病身得醫苟有術(우여병신득의구유술)하면 : 또 비유하면 마치 몸에 병든 사람이 진실로 의술이 용한 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必就而詰之(필취이힐지)하니 : 반드시 가서 처방을 물으니
不憚遠近(불탄원근)하여 : 멀고 가까운 것을 꺼리지 않고 그를 찾아가
冀或有裨(기혹유비)니라 : 혹 도움이 될까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裨 도울 비)
又如行子(우여행자)가 : 또 어떤 나그네가
問路日暮途遠歧歧皆疑(문로일모도원기기개의)하면 : 길을 묻는데 해는 지고 앞길은 멀고 갈림길마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의심스러우면
刈草取柴愚蠢婦孺(예초취시우준부유)라도 : 풀 베는 아이나 나무하는 아이나 어리석은 아낙네나 굼뜬 어린이라도
一一採訪(일일채방)한데 : 일일이 찾아서 갈 길을 묻는데,
其或紿或錯(기혹태혹착)을 : 이 중에 혹 속이기도 하고 혹 착각한 것을(紿 속일 태)
皆不計(개불계)하니 : 모두 따질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所謂詢于蒭蕘(소위순우추요)가 : 이른바 “꼴 베고 땔감 줍는 아이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옛말이
是也(시야)라 : 바로 이것이다. (詢 물을 순)

<성호사설>, 제21권, 경사문(經史門),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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