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인 것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06-14 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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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대학원 수업에서 수화를 주제로 삼아 보고서를 쓰게 됐다. 내게 수화에 관한 두 가지 기억 조각이 있다. 우선 중학생 때 수화를 배운 적이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김윤경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기까지 할 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친한 친구가 노래에 맞춰 수화로 공연을 한다 해서 보러 갔었다. 친해지고 한참 뒤에야 친구는 청각장애인 언니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두 동생은 보여도 언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족사진 액자에도 언니는 없었다. 친구 말로는 언니가 어디 멀리 산다고 했다.


2016년에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됐다. 한국의 수화 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힌 법이다. 한국수화언어법을 만들면서 명칭에 대한 의견들이 많았고 최종적으로는 ‘수어’로 결정되었지만 ‘수화’도 혼용되고 있다. 한국수화언어법은 ‘수어는 언어이고 언어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교수님이 작년에 방송된 MBC 다큐프라임 ‘나의 모국어, 수어’편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화면이 시작되고 “선택한 적 없지만 내 몫인 것들이 있다”는 첫 내레이션이 들린다. 벌써부터 찡하다. 소개되는 첫 번째 가족은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는데 7개월 무렵에 아들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이 엄마는 ‘애가 커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아들과 언어가 없이 답답하게 지내다가 농인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수어교육 대안학교 근처로 이사를 갔다. 가족 모두가 수어를 배우고 집에서는 수어를 쓴다. 비록 서로가 엇박자로 소통할 때도 있지만 아이는 수어로 지식을 배우고 감정표현도 하게 됐다.


소개되는 두 번째 가족은 청각장애인 예비부부다. 중국어를 전공한 예비신부는 “수어는 나의 언어이고 한국어 음성언어는 외국어와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중국어를 전공했을까 싶은데 계속 쓰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도리어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학점 4.0을 받았다고 한다. 청인 남동생의 인터뷰에서 “철이 없었을 땐 우리 가족이 불행한 게 누나의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누나가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또 찡하다.


수어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는 홍콩의 노트르담학교 이야기도 나오는데 교실에 청인 학생과 농인 학생이 섞여 있고 교사도 두 명이다. 먼저 청인 교사가 교과에 대한 지식을 말로 설명하면 농인 교사의 수어 설명이 뒤따른다. 이런 통합 수업은 청인 학생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수어에 대한 편견이 줄고 우리 사회에 농인 그룹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에게 교육 차별이 특히 극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들리지 않을 뿐 지능은 정상인데 동등한 교과과정을 학습할 경험이 부족하다. 수어가 아니라면 지식을 배울 길이 없다. 전문가는 지적 성장에 수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6세까지의 언어습득기간을 놓치지 말고 수어를 가르치라고 한다.

 
보통 청인 부모는 농인 자녀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보청기를 끼고 음성언어를 배우길 원한다. 이럴 경우, 농인 자녀는 생각을 표현하기보다 발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나 자신으로 살기가 어렵다. 등장하는 여러 농인들은 그들이 소수문화지만 ‘단지 쓰는 언어가 다를 뿐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마음가짐으로 농인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정말이지 선택한 적 없지만 내 몫인 것들이 있다. 먼저 가족이 그렇고 타고난 장애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고나 질병도 해당될 것이다. 누군들 결함이 있는 부모, 흙수저, 장애, 사고, 질병을 선택하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그 또한 내 몫인 걸 어떡하랴.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부대낀다.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한다는 걸 껴안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농인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가족들도 보았다. 요즘 나는 선택한 적 없지만 내 몫인 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옆길로 샜다가 못 본 척 뒤돌아 달렸다가 다시 그 길에 서 있다. 그런 나에게 ‘나의 모국어, 수어’는 마음에 전구가 켜지는 다큐였다. 내 몫인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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