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 믿어서야

공영민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 기사승인 : 2020-01-15 11: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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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학·기술

겨울방학이라 우리 아들 넷이 모두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대학도 방학이 돼 필자의 시간도 여유로워진 듯하다. 실상은 수행하는 각종 연구과제와 대학원, 학회 보직 등을 수행하다 보면 시간이 빠듯함을 느낄 때도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보자 마음먹었다. 우선 밥을 하려고 쌀을 찾았다. 연말에 부모님께서 주신 멥쌀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 지 오래됐고, 찹쌀과 식이섬유 섭취를 위해 엊그제 사 온 현미만 조금 남아있었다. 식성이 워낙 좋은 아들들에, 학교와 유치원 급식으로 해결되던 점심을 집에서 해결하다 보니.


이제 밥을 안치기 위한 첫 준비에 들어갔다. 찹쌀을 섞어 넣은 현미에 물을 붓고 손으로 조무락조무락 만지며 허연 물들과 간혹 떠오르는 이물질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을 씻어내야 밥을 안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쌀을 씻어내는 기준이랄 게 뭐 있으랴마는, 밥을 안치기 전에는 쌀을 대략 서너 번 씻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힘을 줘서 몇 분을 씻어야 ‘1회’ 분량이 될지, 몇 번을 씻어야 밥을 안치는 기준에 합당할지를 고민하는 ‘직업병’이 발병하기 시작했다. 


헌데 물로 씻어서 깨끗해진 쌀이라는 기준이 있을까? 여러 번, 그리고 힘을 줘 물로 씻으면 탁도가 낮은 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탁도 높은 하얀’ 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쌀뜨물로 활용하신 걸 알고 있다. 그저 쌀 씻은 물이 투명해 보여야만 깨끗하게 씻어졌구나하고 믿었다. 눈으로 보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익숙해진 터라 마냥 깨끗해 보이는 물만 좋은 줄로 알았다. 깨끗하다는 생각, 아니 ‘깨끗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에 보이는 것과의 연관성은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알다시피 물이란 원래 투명하다. 물에 ‘녹지 않는(불용성)’ 이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있다면 투명하지 않고 탁해 보이게 마련이다. 물에 ‘녹지만 색상을 띄는’ 이물질이 들어간다면, 물은 투명하지만 색상을 띄기도 한다. 눈으로 물의 깨끗함, 아니 ‘물이 깨끗할 것이라는 믿음’을 판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물에 녹으면서도 ‘색상도 띄지 않는’ 이물질이 들어있는 경우다. 이럴 때는 ‘눈’으로는 판별할 수 없으니, 다른 몸의 기관인 ‘코’나 ‘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독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면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깨끗함의 정도를 판별해야 할 것이다. 정확하게는, 깨끗함의 정도가 아니라 ‘이물질이 포함된’ 정도일 것이다.


쌀을 깨끗하게 씻는 기준을 고민하다가 별 생각을 다해 본다. 매일 하는 일이었다면 습관적으로 서너 번 씻고는 충실한 전기밥솥에 맡기고 말 일이었다. 쌀을 씻는 과정은 정확한 기준을 갖고 하는 계량적인 작업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눈으로 보기에’ 깨끗해 보인다는 ‘믿음’을 갖고 하는 습관인 듯하다. 어쩌면 눈에만 의존하는 습관이 아니라 눈을 너무 혹사시키는 습관이 아닐까? 코나 혀나 귀도 활용하는 쌀 씻기가 있으랴마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존해서 ‘계량화할 기준도 없이’ 믿어버리는 습관이 된 것 같다. 


Seeing is Believing(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지만 냄새 맡을 수 있고, 보이지 않지만 맛볼 수 있다. 눈뿐만 아니라, 귀와 코와 혀도 활용하면 좋겠다. 눈, 귀, 코, 혀를 모두 활용하면 우리 머리와 마음에서는 활발한 작용이 일어나 완성체로서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코끼리와 ‘보이지 않는’ 장님 이야기가 생각난다.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는 장님들의 이야기는 부분을 갖고서 전체를 파악하기 힘듦을 알 수 있다. 코끼리가 잘 보인다는 우리는, 코끼리의 실체를 정작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까? 모처럼 공자 말씀이 생각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준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공영민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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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민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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