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농, 라이쉬 부부를 만나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19-08-22 11: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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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농업기행

독일 남부 알고이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다. 이곳 유기낙농가를 방문했다. 라이쉬 부부의 힘만으로 목초를 먹인 유기농(Bio) 우유를 생산하고, 그 우유를 이용한 치즈 가공과 농가민박을 하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 삼아 농가민박을 하는 곳으로 대산농촌재단 연수팀은 일정 중 이틀 동안 이곳에서 묵었다.

 

▲ 안드레아스 라이쉬(Andreas Reish, 왼쪽)와 마리아 라이쉬(Maria Reish)

주변의 만류에도 라이쉬 부부가 1988년부터 고집스럽게 유기농을 택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가파른 경사지의 초지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현재는 총 33헥타르의 초지에 16마리의 젖소를 키우는데, 경사진 초지에서 나오는 풀로 건초를 만들어 먹일 수 있는 만큼 기르고 있다고 했다. 사료나 건초를 다른 곳에서 사오지 않고 그 땅에서 나오는 풀로 소에게 먹인다. 여름에는 소들이 초지에서 직접 풀을 먹고 풀이 나지 않는 다른 계절에는 여름 동안 풀을 베 직접 만들어 놓은 건초를 사용한다. 

 

▲ 라이쉬 부부의 농가 앞에서


이런 경사진 초지에서는 어떤 기계로 풀을 베느냐고 일행이 물었다. 마리아 라이쉬(Maria Reish) 씨는 로봇 흉내를 내며 내가 바로 로봇이라고 호탕하게 웃는다. 초지의 경사가 심해 기계를 사용할 수 없어 부부가 손으로 낫을 들고 직접 풀을 벤다고 했다. 


태양열과 인근 숲에서 얻은 나무로 우드칩을 직접 만들어 에너지로 사용하고, 건초는 여름 볕을 이용해 양철지붕을 데워 바람을 통해 말리고 있었다. 우드칩을 만드는 기계는 마을의 여섯 농가가 함께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건초를 말릴 수 있는 양철지붕과 태양열 시설을 구축하는 데 큰 비용이 들었지만 지금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지속적으로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힘이 들어도 자연 안에서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좋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 우드칩을 만드는 기계(여섯 농가가 함께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부부는 지역의 자연에서 에너지와 먹거리를 얻고,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지키며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있었다. 농업과 함께 농가민박을 하는데 낙농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슬하에 5남매를 둔 부부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 채소 등 먹거리 대부분은 텃밭에서 자급자족했다. 독일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니는 데 반해 부부는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허나 아름다운 농촌에 사는 일상이 좋고 자연과 함께하는 농부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안드레아스 라이쉬(Andreas Reish) 씨의 오래되고 낡은 작업복에서 그의 검소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
 

▲ 초지에서 얻은 나무로 우드칩을 만든다

소농 앞에 대농이 서 있다

함께한 일행이 유럽연합(EU)에서 농부가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직불금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지 물었다. 웃음과 함께 “노코멘트”라며 답을 어물쩍 넘긴다. 허나 거듭 묻는 질문에 단호한 표정으로 “소농 앞에 대농이 서 있다”고 답한다. 소농의 직불금은 소득 비중의 30%가 안 되는 데 반해 200헥타르 이상의 대농은 직불금이 60%를 넘는다고 했다. 독일의 농업은 땅이 넓을수록 지불금 혜택을 많이 받게 되는 구조라 소농들의 현실이 더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30두 미만의 인근 젖소 농가들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대농들은 농가를 더 키우기 위해 소농들을 흡수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 소농들의 삶의 면면을 실제로 알지 못하지만, 독일은 산업국가답게 농업에서도 자동화와 효율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녹색의 질보단 양에 집중하는 듯했다. 라이쉬 부부의 작업복에 고된 노동의 흔적이 묻어났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는 부부의 노동의 양은 녹록찮아 보였으나 농업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표정은 어느 누구보다 맑았다.
 

▲ 초지에 풀을 뜯는 여유로운 소들의 모습

건강한 소가 건강한 먹거리를 준다

모든 현상에는 인과가 있다. 가시적이라 바로 알 수 있는 인과가 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밖에도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자연의 생태계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한 측면만 고려해 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도 모르는 어떤 문제가 지금도 지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나는 것은 순리다. 이 순리를 사람의 기술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 그 때부터 탈이 나기 시작한다. 


녹색을 다루는 산업들(농업, 임업)은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데 기여한다. 산업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쉽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 미세먼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산업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 수 없다. 볕, 바람, 땅 등 자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먹거리가 생산되지 않는다. 건강한 먹거리는 건강한 자연에서 나온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이치로 이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독일의 축산업은 놀랍다. 독일에서는 ‘농가의 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의 합이 0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통용된다. 질소가 들고나는 양의 합을 0으로 지키는 것을 법으로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 농민들도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만나는 농민들마다 키우는 소의 두수를 물으면 “질소가 자연 순환 가능한 범위 내의 마릿수만큼 소를 키운다”고 했다.

켐프텐 직업학교, 농부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을 만나다

연수 일정 중 직업고등학교인 켐프텐 직업학교를 방문했다. 농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중 한 독일 학생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소가 길러지고 있냐고 물었다. 누군가 축사의 법적 기준을 답변했다. 독일 학생들이 “그 질소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반문했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부끄러웠다. 독일에서는 건강한 가축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얻어진다는 기본 원리로 동물 복지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고, 농업을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또한 그것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독일 농촌을 다니며 아름다운 초지에서 여유로운 소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우리네 축사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켐프텐 농업직업학교


▲ 켐프텐 직업학교


축사는 언제까지 마을에서 분쟁거리가 돼야 할까

우리네 농촌의 축사 문제가 떠들썩하다. 마을 안에 축사가 들어오는 일로 주민들과 축산업자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실제 농촌에서 축사를 지나갈 때면 축사 밖에서 뛰노는 소를 만나본 일이 아주 드물다. 축사의 악취에 절로 표정이 찡그려진다. 언젠가는 축사의 갇힌 소들이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초지에서 풀을 뜯는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 태양광과 양철지붕을 이용해 건초를 말리는 시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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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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