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회 자치 활성화를 위한 선결 조건

도상열 두동초등학교 교사 / 기사승인 : 2020-07-23 11:16:53
  • -
  • +
  • 인쇄
교육 톺아보기

지역마다 환경과 문화가 다름에도 전국의 모든 학교는 동일한 국가교육과정을 동일한 관료행정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한다. 전국 어느 학교, 학급을 방문해도 모습은 비슷하다.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로 여유가 없어 교육에 관한 전권을 학교에 위임하고 마을과 시민사회가 가진 교육역량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 국가가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전 국민을 사회가 필요한 인적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교육과정과 행정체계가 어쩌면 더 유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교육체제를 통해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구동성으로 학교자치, 마을학교, 교사교육과정을 말한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도태할 수 있다는 위기의 반영이기도 하고 마을과 시민사회가 교육역량을 구축해 지역과 맞지 않는 국가교육과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교 내부를 살펴봐도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자치역량이 성장해 믿고 맡겨주는 시스템만 마련되면 다양한 모습을 꽃피울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한 학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지난해 울산교육청이 도입한 학생참여예산제를 우리 학교에서 운영해 본 결과 존 듀이가 말하는 흥미와 참여에 기반한 학생 민주주의가 가능함을 확인했다. 학생들에게 예산과 운영시스템을 제공하고 학교가 지원해주자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들을 전개하며 스스로 즐거워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모회도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와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해 자체 규약을 만들었고 올해는 직접선거로 학부모회 임원을 선출했다. 선출된 임원들이 사업계획과 예산서를 세워 학부모회 총회에서 심의-의결 받아 1년 사업을 집행한다. 학교는 학부모회에 관여를 최소화하고 돕는 역할만 한다. 울산교육청은 매년 학교에 200만 원의 학부모회 운영비를 배부해 학부모회 사업비로 사용하도록 지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집행 과정이 학교에 예속돼 있어 학부모회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준다는 데 있다. 이 예산을 집행하려면 사업할 때마다 학부모회 담당 교사와 소통해 예산집행 기안문 학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여러 학교의 학부모회에서 예산집행 과정의 어려움을 호소해 올해는 개산급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어려움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개산급이란 소요 예산을 통째로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학부모회 예산은 학부모회로 주는 것이 아니라 담당 교사에게 주게 돼 있다. 행정실에서는 개산급을 지급받은 통장과 카드를 학부모회에 넘겨주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사업마다 교사가 확인하고 물건을 직접 사주든지 집행 절차에 참여하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학부모회를 믿을 수 없으니 교사가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담당 교사가 학부모회 예산을 자신의 통장과 카드로 개산급으로 받아 기안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협의회비, 수당, 여비, 초청강연비 등은 개산급으로 지급할 수 없도록 해 예산집행이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우리 학교 학부모회에서 천 마스크 만들기 강좌를 마련해 학부모 중에서 손바느질 솜씨가 있는 분을 강사로 모셔서 천 마스크 만들기 강좌를 진행하고 강사에게는 5만 원의 강사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업계획서와 예산서를 모두 작성해 성립 전 예산편성 결재까지 받았다. 그런데 강사비 5만 원을 개산급으로 바로 지급하지 못하고 다시 학부모회 담당 교사가 강사비 지급 기안문을 작성해 결재를 받아 집행해야 한다. 학부모회도 담당 교사도 행정실도 5만 원을 집행하기 위해 너무 많은 행정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학교가 바뀌기 위해서는 이런 세세한 부분에 낭비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번거롭다 보니 학부모회 임원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학부모들끼리 좋은 강좌를 마련하고 배우고 나누고 봉사활동은 할 수 있지만 담당 교사와 행정실과 사업마다 의논, 보고, 결재를 받아야 하고 때론 실랑이를 벌여야 해서 선뜻 집행부로 나서는 게 주저되기 때문이다. 학교 자치 활성화, 학부모회 활성화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주 소소한 부분을 바꾸기가 더 어렵다. 


도상열 두동초 교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도상열 두동초등학교 교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