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06-26 11:17:01
  • -
  • +
  • 인쇄
서평

 

U-20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한때가 지났다. 이번 시합에서 걸출한 스타 선수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었으니, 이름하여 이강인! 연일 미디어는 메시, 아궤로, 포그바 같은 세계 최고 스타 선수들도 U-20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강인에 대한 찬사와 기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축구에 대해 일도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슛돌이 시절 꼬마 이강인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 분명 될성부른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으렷다. 


한국에서 축구만큼 대중적인 운동이 또 있을까? 유아 FC부터 시니어 FC까지. 한국에서 남자라면 일생을 축구공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평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어디선가 모여든 한 무리의 남자들이 강변 풋살장에서 축구 시합을 하는 모습을 보고, 주말 아침은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조기축구하는 아저씨들의 기합 소리에 잠을 깨곤 한다. 그다지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남학생들도 아침 일찍부터 학교 운동장에서 방과후학교 축구부 수업을 받고 있고, 점심시간이 되면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축구하러 가는 남학생들을 매일 만난다. 남자 중고등학생은 틈나면 축구하러 모이고 남자 대학생은 과 대항 축구 시합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축구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심지어 소개팅 자리에서조차 신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이니 남자들의 축구 자부심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어라? 축구하는 여자는 어째 본 적이 없다. 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운동을 매우 사랑하는 나조차도 축구는 해 본 적이 없다. 배드민턴, 배구, 수영, 마라톤, 등산, 탁구, 자전거, 서핑 등 운동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도대체 왜 축구는 해본 적이 없을까. 심지어 축구 골대는 모든 학교 운동장에 있지 아니한가. 과연 축구하는 여자는 전설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운동하는 여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아마추어 여자 축구가 있는지 없는지, 여자들이 축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전혀 관심 없는 세상의 곳곳에서 축구에 푹 빠진 여자들이 축구를 시작하고, 축구를 시작하게 끌어 주고, 축구를 하다가 다치고, 힘겹게 재활하고, 그래 놓고 또 기어들어 오고, 축구를 못해서 병이 나고, 축구를 공부하다 못해 심판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축구를 좀 더 잘해보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도 매일매일 연습하”는 이야기다.


성차별 문제를 얘기할 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비유를 들곤 한다. 정말이지 축구하는 여자들은 축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페미니스트라 평가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멀어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굵은 허벅지와 알 박힌 종아리는 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 여성의 것은 옷으로 잘 가리거나 축소술(?)이라도 받아서 얇게 만들어야 하는 근심 덩어리이다. 운동장에서 흘리는 남성의 땀은 자연스럽다 못해 야성미가 느껴지는 데 반해, 여성의 땀은 화장이 지워질까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웬수 덩어리다. 게다가 거친 몸싸움과 욕설, 까만 피부 등은 전혀 ‘여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여성성’에 대한 강박만 버린다면 강한 체력, 자부심, 자존감, 자매애, 의리, 인맥을 얻을 수 있으니 이야말로 진정 여성스러운 운동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경험처럼 축구를 비롯한 운동은 개인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어 놓는다. 나도 운동 때문에 머리카락이 점점 짧아져 가고, 땀 때문에 화장은 하지 않고, 옷장에는 운동복이 한 가득이고, 굵고 단단해진 허벅지와 엉덩이에 만족한다. 삶의 많은 부분이 운동에 의해 건강하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모습이 학교에서 만나는 수 많은 여자아이들에게 씩씩해도 괜찮아, 덩치가 커도 괜찮아, 피부가 까매도 괜찮아,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땀 흘려도 괜찮아, 꾸미지 않아도 괜찮아, 상냥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위안이 되길 소박하게 소망한다. 자매들이여, 앞머리 따위는 상관하지 말고 맘껏 달려보는 건 어떨까!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