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전 읽기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10-11 11: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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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신발을 벗고 발이 개울물과 만나는 순간 마음은 무장해제되며 자연과 일체가 된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자연은 책이자 경전이다. 활자로 된 책이 조금 식상해지면 자연을 읽으러 간다. 온갖 잠언과 가르침과 지혜를 찾아볼 수 있는 명상록이다. 자연을 바라봄은 복잡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잠시 휴식이다. 일상을 치러내느라 꽁꽁 메어둔 끈을 잠시 풀어두는 느슨함이다. 바쁨과 치열로 살아가는 보람과 성취도 있지만 꽃잎에 앉은 나비가 날개를 접고 펼치는 것을 반복하듯이 사람에게도 그런 리듬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영남알프스 숲길 안내 프로그램과 관련한 교육을 제안 받아 가을에 막 들어선 숲속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늦은 더위로 숲은 아직 단풍과 거리가 멀고 한여름의 끝 같다. 폭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계곡물은 넘쳤다.


힘찬 소용돌이를 받았는지 떠내려갈 것은 다 떠내려가고 쓰러진 나무가 엉켜 전위예술처럼 더 역동적이다. 물줄기는 소를 만날 때마다 풍성한 포말과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흘러간다. 저 막을 수 없는 물길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자연을 따라 그 흐름의 일부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불어난 물이 개울보 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개울을 건넜다. 흐르는 물은 저 먼 산에서 내려와 맑은 빛을 띠고 발을 간질이며 훑고 지나갔다. 이왕 벗은 발을 어찌 다시 가두겠는가? 이미 마음은 무장해제된 상태로 풀렸다. 그냥 계속 맨발로 걷자고 제안했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걷는 촉감은 이렇구나. 신발 없이 지나가는 무수한 생명체들.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은 새끼 누룩뱀을 발견했다. 올해 태어나 일찍도 떠났구나.


참석한 교육생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다. 자연을 새롭게 바라볼 시각을 열어줘야 할 시간이다. 고마리꽃이 가진 작은 우주와 물가에 버티고 사는 생존전략을 들려준다. 인간은 손발이 있고 장애나 병이 아니면 언제나 이동할 수 있는 존재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으니 부딪쳐 오는 운명의 그림자를 그대로 맞서는 존재다. 그러기에 더 많은 방책과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묵묵한 존재들이 더 깊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비겁하게 피했던 순간들은 영원히 후회로 남아 있다. 그 때 더 맞서 부딪쳤어야 하는 건데... 한 번 지나간 시간들은 그 순간과 멀어지는 일만 남는다.


나무는 대책 없이 무력하게 맞서지는 않는다. 큰 나무라 하더라도 각각이 가지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히드라, 산호 등 강장동물은 각각의 개별적인 생명체의 집합체이듯이 나무도 그러하다. 나무도 성장시킬 가지와 도태시킬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투자한다. 그늘이 짙어 광합성이 부족해질 가지는 서서히 영양분을 빼 바람에 부러지게 하거나 아예 옹이 채 빠지게 만든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수백, 수천 년을 사는 이유는 끊임없는 내부의 조정과 혁신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 싯구절에 ‘흔들리며 피는 꽃’도 있지만 나무도 흔들리며 자라야 자기중심 뿌리를 잘 내리게 된다. 아직 약하다고 나무 지지대를 받쳐 두면 나무는 자기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잔뿌리들이 상처를 입어야 더 왕성한 뿌리가 뻗어나가며 흙을 꽉 움켜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태풍은 나약한 생명체들에게는 담금질이자 새로운 판갈이다.

통통한 도토리 하나는 벌써 흙을 뿌리로 물고 악착같이 겨울을 날 모양이다. 작은 생명체가 가진 그 강인함이 기특하다. 떠다니는 개구리밥이 안 되려면 뭔가를 꽉 물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런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든 자신에게 즐거운 일이든. 겨울이 오는 줄을 모르고 꽃송이를 부풀리는 진달래는 며칠간의 더위에 꽃눈을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상황에 대한 판단 착오다.

바위에 진달래 한 그루가 자리 잡기 위해선 지의류가 깔리고, 그 위를 이끼가 자리 잡고 그 물기 많은 배지 같은 촉촉함이 만들어져야 가능해진다. 일단 씨앗이 초록의 이끼 위에 던져지면 무조건 싹이 트고 나무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리저리 에너지를 낭비할 시간이 없다. 5센티미터도 안 되는 진달래에서 꽃이 피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하는지. 자연은 천천히 움직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묘가 가까운 산자락 끝에 물이 흥건하게 배어나는 곳에는 멧돼지떼가 온 땅을 헤집어 놨다. 멧돼지는 코를 땅에 묻고 킁킁거리며 온갖 풀뿌리는 캐어 먹기도 하고 흙으로 비비면서 자기 몸을 정화시켰을 것이다. 들썩여지고 헤집어진 이 땅에도 봄이면 또 다시 새로운 싹들이 트고 질서를 잡아나갈 것이다. 새로운 부딪침으로 혼돈과 무질서를 만드는 과정을 견딘다면 성장은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프로그램 담당자는 숲 속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와 명상의 공간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숲 자체가 백과사전이고 걷는 것이 명상이니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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