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위태로운 일상

조숙 시인 / 기사승인 : 2020-07-01 1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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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세상

아담과 이브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부부 이야기는 늘 화제꺼리였다. 얼마 전 방영됐던 ‘부부의 세계’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국가에서도 부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부부로부터 시작되는 인구재생산이 나라의 세포를 이루기 때문이다. 탄탄한 가족 구성원들로 이뤄진 수많은 국민의 숫자는 국가가 꿈꾸는 인구구성일 것이다. 국민을 재생산하는 부부의 역할, 그것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을 시에서 보면 애잔하다.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풍경으로 거느린다(하략) 문정희 시인의 ‘부부’다. 


오랫동안 일상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거리는 사라지고 실용만 남은 것이다. 죽일 듯 싸우다가도 모기를 함께 잡고,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체면을 차리다가도 ‘밥풀꽃’만큼 남은 연고에 치마를 걷어 올리고 ‘배꼽’에 남은 약을 나눠바르는 ‘실용’의 사이. 경제공동체가 부족함을 견디고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살아가기 위한 순간들이다. 너무나 잘 드러내서 독자가 오히려 부끄러워질 정도다. 


다른 시 한 편이다. 아내가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러마라고 하자 아내는 마지막 수업 전에 전화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전화가 왔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의 마지막 수업을 기다렸다 아내는 좀 늦게 나왔다/ 많이 기다렸느냐고 아내는 물었다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와 문제없는 지 궁금했다 아내는/ 연체시킬 거라고 했다 연체시키지 말고 현금서비스라도 받아서 메꾸라고 했다/ 아내는 좀 짜증이 섞인 말로 그러게 술 좀 작작 먹으라고 했다/ 한숨 섞인 어조로 나는 그러마라고 말했다/ 막걸리를 마시는데 아내가 휴지 좀 달라고 했다 두루마리 째로 주려는데/ 버럭 아내가 한 장만 줘 라고 소리를 질렀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좀 있다가 왜 화가 났느냐고 물었다 나 화 안 났어 하고는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처다 보았다 수의 같은 이불이 깔리고/ 뿔 난 가재미처럼 등 돌린 나를 아내가 꼬옥 껴안았다/ 난 저 쪽으로 등을 돌렸다 왜 등을 돌리느냐고 아내가 물었다/ 조금 있다가 등은 다시 돌아갈 거야라고/ 나는 말했다 등은 돌아가지 않았는데 아침이 왔다/ 아내는 내게로 몸을 돌렸다/ 나도 다시 등을 돌릴 생각을 그만 잊어/ 토끼로 변한 아내를 꼬옥 껴안았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김만호 시인의 ‘부부’. 이 시는 부부 사이에 늘 벌어지는 일상이다. 카드는 연체되고, 줄일 것이라고는 술밖에 없고, 두루마리 화장지도 ‘한 칸만’ 떼어 써야 하는 아끼는 삶의 연속이다. 지루한 일상이 이어져서 서로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라 삶이 척박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시인은 일을 하는 아내를 기다려 마중을 할 정도로 다정하지만, 그것을 아는 아내도 가난을 견디는 데 힘이 든다. 부족한 삶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한다. 어려운 부분을 번갈아가면서 꼬옥 끌어안아주지만, 그런 어려움은 오래 견디기 힘들다.
겨우 이어지던 일상은 코로나19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주변의 예술가들 중에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 부부의 일상이 걱정된다. 경제공동체인 부부는 의리나 도덕적 의무만 가지고 지속하기 어렵다. 시에서도 그 위태로운 점을 보여준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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